- 동명이인
- 프로게이머 손석희를 찾아오신 분은 손석희(프로게이머) 항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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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학창시절 ¶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되던 해 직업을 그만두고 양수기 판매에 뛰어들었다. 집안에 있던 돈을 다 털고 사들여 놓은 걸 경기도 전곡 어딘가에 풀어놓았다가 큰물이 져 몽땅 떠내려가 버리고, 그는 "이후 우리 식구들의 사건은 그 사건처럼 극적인 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중구 필동의 양철담장집에 세를 들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고집이 세고 터프했다고. 오죽하면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의 성적표에 "이 학생은 고집이 똥고집"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근처 퇴계로 고아원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딱히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여서가 아닌 누구 하나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사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3학년때 부임한 담임교사가 도시락 반찬을 싸 오지 않고 아이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더니 한술 더 떠 아이들의 도시락을 둘러보고 같이 먹자며 아이들을 불러냈고, 곧 학급은 선생님 책상에 늘 불려가는 아이들, 가끔 불려 나가는 아이들, 전혀 불려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고, 당연히 그는 마지막이었다. 본인은 그때 비로소 가난을 알았다고.
이후 성북구로 이사를 갔고, 조용했던 아이들 분위기에 맞춰 덩달아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 6학년 때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천장에서 작은 흙덩이가 떨어졌다. 대충 지은 집에서 빗물 새는 건 흔한 일이어서 식구 모두 신경 쓰지 않다가 떨어지는 흙이 점점 많아지자 살림을 마루로 옮기고 옷을 챙겨 급히 집을 나오니 천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서라벌중학교에 입학했고 6~7정거장 거리를 꼬박꼬박 걸어다니며 차비를 모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축과 레코드 두 장을 샀고[1]결혼하고 새 전축을 살 때까지 15년을 내리 그 전축과 보냈다고.
한 명문 공립학교 입시에 낙방하고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직후 선배들에게 찍혀 방송반원이 되었고 이 때 처음으로 방송실에 들어갔는데 방송실 뒤쪽에서 쭈그려 앉아있던 사람이 송승환이었다고 한다.[2]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이 때 경험은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학년 때 아버지가 부도를 내 중학교 때 살짝 여유로워졌던 집은 다시 어려워졌고, 산비탈에 있는 방 두 칸에 부엌 딸린 집에서 살게 된다.
대학교 입시에 낙방하고 재수를 했지만 지원한 학교에 또 낙방했다.포기가 빠른 편인(?) 그는 미련없이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고 1979년 좀 편해보겠다고 타자 배워 간 군대에 입대하고 부산에 있던[3]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배치되었다.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사건을 겪는다. 모두 2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1.2. MBC 입사 ¶
1984년 MBC에 입사했다. (MBC 입사 전엔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던 듯.) 친구들의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보라는 권유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당시 기자와 PD직 포함해 전체 수석 합격으로 화제였다. 이후 MBC 대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지다가 1986년 앵커 이미지가 강렬해지는 것을 우려한 사측에서 보도국으로 발령이 내 기자가 되었다. 본인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만이었다며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온다. 아나운서 생활 때 만난 6살 연하의 아나운서 신현숙[4]과 1년 7개월 열애 끝에 1987년에 결혼했다. 참고로 이후 MBC에서는 문지애-전종환 전까지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내 커플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시점 MBC노조가 정부의 방송관력법에 맞서쟁위발생 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기로 하지만 패용자가 모두 빼앗긴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그는 갈등하다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고, 손석희는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라고 회상했다. 자괴심에 시달리다 다음엔 제대로 달고 나갔다고 한다.
이후 1992년 가을, MBC 노동조합활동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게 된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봄부터 정권비판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하고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노조가 반발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그닌 이 때 주동자로 몰려 동료 몇 명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당시 손석희는 노조간부도 아니었고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찍힌 사례이다. 여담으로 이때 이미 미남으로 유명해서 관련 보도 중에는 '누가 이처럼 선하게 생긴 미청년을 파업현장으로 내몰았냐'는 말까지 등장했다. 흠좀무. 이 때 이미 37살이었다. 흠좀무2 여성 앵커의 상징이었던 백지연도 다른 노조간부들과 비슷한 수준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 때 있었던 전설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링크 참조.
그러다 1997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국제 민간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사측에서 1년 갔다 오라는 걸 쉴 바에야 확실히 쉬자고 2년을 고집했는데 죽어라 공부만 하다 왔다고(...)토플 공부부터 시작해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딴다. 당시 미국 유학 때 찍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손석희의 미국탐험'으로 그는 이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만큼 고생하기도 했고 애착이 간다고 한다.
2년의 유학 생활을 마친 후 복귀해 2000년 MBC 라디오에서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진행자가 된다. 이 시선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의 시사보도와 의제설정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아침 프로라 초창기에는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언젠가부터는 정치인이나 유력인사들이 먼저 연락해온다고. 참고로 동명이인 프로게이머도 준프로 시절에 여기에 출연했었던 적이 있다.
2002년 유시민의 뒤를 이어, 100분 토론의 3대 진행자[6]가 되었고 2009년 10주년 방송 때까지 진행한 역대 최장수 진행자이다. 2009년 11월 19일 10주년 특집을 마지막으로 하차. 하차와 관련해서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듯하다.[7] 하지만 아무리 제작비를 줄이고 싶어도 100분 토론의 터줏대감이자 프로그램의 간판을 바꾼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1년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고 보궐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시장후보 출마를 묻는 질문에 '소는 누가 키우냐?'고 소드립을 날렸다. 이 선거를 앞두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나경원 의원과 토론을 하던 도중 손석희가 나경원 의원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한 검증성 질문을 계속 묻던 도중 나경원 의원이 "정책이나 공약이나 이런 건 안 물어보시나요? 저는 사실 손석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거의 해본 적이 없거든요. 야권후보는 많이 하셨더라고요. 저희가 예전에 보니까 그래서..."라고 불만을 토로해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다만, 그 때 당시 손석희는 아직 박원순 후보와 토론을 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 <시선집중> 인터뷰는 가능하면 정책 위주로 가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네거티브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후보 검증이라고 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조금 더 질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제가 하는 건 당연한 검증이지만 남이 하는 건 네거티브 공격입니다.
결국 나경원 의원이 보통 언론에서 형평을 기한다는 이유로 좀 수준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고 말하자 손석희는 "'일반적인 언론이 그렇게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말씀하신 건가요?"라는 대답을 했고 곧 주제가 바뀌면서 토론은 다시 좋게 진행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MBC라는 조직, 라디오 방송에서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그렇기에 MBC 내부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부임한 후 자르고 싶은 라디오 진행자 리스트에 배철수 씨와 함께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건드리기에는 너무 타격이 거서 인사 칼바람이 피해갔다는 말이 나온다.
1.3. 종합편성채널 JTBC행 ¶
손석희 취임 전
![토끼야_어디가니.jpg 토끼야_어디가니.jpg](http://rv.wkcdn.ne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6%90%EC%84%9D%ED%9D%AC?action=download&value=%ED%86%A0%EB%81%BC%EC%95%BC_%EC%96%B4%EB%94%94%EA%B0%80%EB%8B%88.jpg)
손석희 취임 후.
JTBC 신뢰도, MBC SBS 따돌렸다
JTBC 신뢰도, MBC SBS 따돌렸다
2013년 5월 9일 종합편성채널인 JTBC로 소속을 옮긴다는 보도가 나왔다. JTBC에서 보도 총괄 사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5월 10일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하차.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목소리가 좀 잠기고 억양도 살짝 떨리는 등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로 13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팬들은 손석희의 말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정론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며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나 중도, 중립적인 견지를 유지하던 그가 종편의 간부로 간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의견도 몇몇 있다. 주철환 JTBC 대PD가 손석희의 매형인데 그게 영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기사도 나왔었다.
손석희의 하차 이후 이재용 아나운서가 그 자리를 이어 진행했다. 당시 이재용 아나운서가 임시 진행인지 아예 전담하기로 한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고, 단지 손 교수가 쉬거나 할 땐 이 아나운서가 시선집중을 맡아서 진행했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파업 이후 MBC에 남은 고참급 아나운서 중에서는 그나마 이재용 아나운서의 평판이 괜찮은 편이니까... 허나 이재용 아나운서는 결과적으로 임시 진행이었고, 그 뒤를 이은 김창옥 아나운서도 임시로 진행했다. 손사장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후임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하기는 했는데, 역시나 김창옥 아나운서도 지방 MBC 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버린 관계로 다시 이재용 아나운서가 진행했다. 사장을 만드는 프로그램 시선집중? 최종적으로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신동호 아나운서가 바통을 받아 진행하게 되었다.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일보와는 논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에게 보도 부문 전권이 있는 만큼 할일은 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보인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도 있다. 인터뷰 보면 알겠지만 의욕은 정말 강하다. 허지웅은 썰전에서 손석희 사장이 들어온 이후로 과연 JTBC가 삼성을 깔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평했다. 사실 따져보면 JTBC는 삼성 관련된 내용 빼고는 은근히 정치적으로 중립에 가까운 논조를 가지고 있는 편이었으니...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관련기사
출근 첫날이라며 그의 출근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는데, 사실 10시 출근이라 기자들이 10시에 맞춰서 사옥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손사장은 이미 9시에 출근을 한 상태라서 다시 내려와서 포토타임(?)을 가졌다고 한다. 일찍 출근하던 버릇이 아직...
1.3.1. JTBC 뉴스 9 ¶
그리고 본인이 뉴스를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마이크 앞을 떠났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이제 목소리 듣기 힘들겠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 의 단독진행을 맡게 됐다는 뉴스가 떴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의 단독 앵커를 맡는다. 이 건들에 관련해서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가장 정확하다.
JTBC 뉴스 9 티저 영상.
JTBC 뉴스 9에서의 첫 오프닝.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보도평가 중 지상파 3사보다 JTBC뉴스가 압도적인 보도 횟수를 자랑해서 정론의 언론인 손석희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친여당 성향의 중앙일보내에서도 자신의 뉴스를 만들어가는 진정한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
2013년 12월 19일, 결국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가 편파보도로 중징계를 받았다. 관련기사
재밌는 건 방송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종북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한 TV조선 뉴스쇼 '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징계로 넘어갔다.기사
재밌는 건 방송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종북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한 TV조선 뉴스쇼 '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징계로 넘어갔다.기사
2014년 4월 16일 JTBC 뉴스 9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보도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우선 JTBC기자의 망언에 가까운 표현으로 분위기가 안 좋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사과했다. 의례적인 사과와는 달리 댓글 등을 통해서도 진심을 담은 사과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평소의 언행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듯. 또한 내부 보도에서도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석희는 안전설계 전문가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구조대가 침몰한 배에 공기를 주입해 생존 확률을 높이는 작업에 관해 얘기했으나 전문가는 여객선 운행 특성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이어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손석희는 혀를 차다가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질문을 기다리던 상대방이 전화가 끊겼나 당황했을 정도. 손석희는 바로 질문을 이어갔지만 목메인 소리를 내는 등 냉정을 찾기 힘든 듯했다.7분 20초부터 또한 4월 21일 방송에서는 실종자 가족이 전화 인터뷰 직전 딸의 시신 발견으로 급히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듯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하다 가까스로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관련영상
2014년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세월호 침몰사고 보도를 위해 진도 팽목항에서 JTBC 뉴스 9를 현지진행했다. 따로 마련한 세트나 특별한 의상, 메이크업도 없이 현장에 나와 직접 보도를 하며 (그것도 앉아서 진행하는게 아니라 방송 끝날 때 까지 서서 진행한다. 세트라고 해도 천막 하나 뿐. 서서 진행하는게 뭐가 대수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요즘에는 1시간 30분간 방송한다. 장장 90분간 서서 생방송으로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시라. 보통 힘든게 아니다. 그것도 와닿지 않는다면 지상파 진행자들의 진행방식과 비교해 보시길.) 실종자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뉴스[8]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통해 국민적인 관심과 신뢰를 이끌어 내,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9]
참고로 손석희가 입사하기 전에 JTBC 뉴스의 수준을 보면 한 사람이 방송사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다는걸 느낄수 있다.
2.1. 동안 미중년 ¶
![BURy1j-CEAAXVhm.jpg BURy1j-CEAAXVhm.jpg](http://rv.wkcdn.net/http://rigvedawiki.net/r1/pds/BURy1j-CEAAXVhm.jpg)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동안의 수준을 뛰어넘어서 얼굴에 변화가 없다.
100분 토론 고별방송에서 박원순 現 서울특별시장,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가 1956년생[11]으로 손석희 교수와 동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을 충공깽으로 몰아갔다. 동안 유지의 비결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가 동안이 아니라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시다."라고 대답했다.[12] 손석희의 스타일을 본다면, 전국민을 노안으로 만들 작정이다.
2005년 MBC 아나운서국 국장으로 임명될 당시 "뭐 저렇게 어린 사람을 국장을 시키냐!"라는 항의를 받았다고 하며 이에 대한 손석희의 답변은 "저, 내일모레 불혹입니다.". 당시 나이 만 49세 때. [13]
'꽃미남의 그윽한 유혹' 이란 제목으로 'Careless Whisper'란 음악과 함께 안경을 벗는 모습이 힛갤에 등극했다.(혹은 손 교수의 은밀한 유혹이라고 한다.)원본.수정본.
어찌됐든 자타가 공인하는 미중년이다. 이렇게 외모가 되기 때문일까? 남성팬들도 많지만 여성팬들, 특히 젊은 여성팬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의 바람은 '손석희 교수 같은 시아버님이 있으면'이다. 손석희 교수가 시아버님이라면 잔소리는 100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긴 하다.
2.2. 성향 ¶
개념과 명성을 갖춘 방송인으로서 여러 정치권에서 구애를 해왔다. 자신은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시대의 상황을 전할 뿐이라는 입장으로 정계 진출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매번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흘린 출마설에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정동영, 박성범, 맹형규, 한선교, 박영선 등 지상파 방송인들이 줄줄이 정계 진출하자 '손석희도 혹시?' 하는 시각도 있었다. 더구나 100분 토론의 전임 진행자들 유재건, 유시민도 이 인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사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방송 진행자나 기자의 정계 진출은 거의 볼 수 없다. 언론의 중립성이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다만 낙선해서 정계를 떠난 전직들이 방송 진행자로 나오는 경우는 가끔있다. 썰전에서 강용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특히 홍준표가 손석희에게 정계진출을 매우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하지만 물론 손석희는 정중히 거절.
실제로도 대놓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없다. 대표적으로, 탄핵 정국 직후 한나라당의 모 의원이 "탄핵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의로 유도한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즉각 "알면서 왜 (탄핵을) 하셨습니까?"고 받아쳤다는 떡밥이 있으나 이는 와전된 것이다. 애초에 그 주체는 한나라당도 아니고 민주당이었던데다 시기도 탄핵 이전이었다. 탄핵 발의(3월 12일) 이전인 3월 6일 새천년민주당의 유모 의원이 탄핵안 발의가 총선용이 아니라며 "오히려 노 대통령이 탄핵의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냐"라고 말하자 "그러면 그렇게 안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한 것. 이 질문에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자체가 헌법수호에 문제가 되므로 총선유불리를 생각하지 않고 탄핵을 한다, 국민도 알아줄 거다라는 취지의 말을 어물거리며 데꿀멍했고 여기에 손석희는 글쎄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이해하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마지막 일침을 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도깨비뉴스의 분석기사.
100분 토론 특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면전에서 좌우대립 관련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 생각을 살짝 말씀드리자면 저는 참여정부가 별로 좌파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이쯤 되면 성향이 어떤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한동안 보수세력들이 '손석희도 좌빨이다.'라고 공격하자 100분 토론에서 "저에 대해서 한두 분이 말씀을 하시는데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중립."이라며 "굳이 따지자면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보수 쪽 출연자인 전원책 변호사가 "휴머니즘 자체가 바로 좌파의 시작"이라고 표현해서 관객석의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물론 활자로 보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날은 특집 방송이라 그냥 훈훈하게 친 농담이다.
2.3. 기타 ¶
- 시사저널이 선정한 영향력 1위 언론인에 뽑혔다. 관련기사
- JTBC 뉴스 9 진행 1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했다. 기사
- 손석희의 여러가지 어록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많이 맡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한민국 방송에서 최초로 아나운서와 기자를 겸직한 인물이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한동안 보도국 기자로도 활동했고 이후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복귀 아나운서국장까지 역임했다. 아나운서 입사→보도국 기자 전직 코스는 이후 19대 국회의원(구로 을) 박영선, 김주하 앵커들이 뒤따른다.
- 2013년, 언론인 영향력·신뢰도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 한 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본인의 말로는 갤러그 등 고전게임을 매우 잘한다고 하지만,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과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갤러그로 점수 150만점 기록했다는 말이 섞여있어 진위는 불명이다. 갤러그는 100만점에서 자동 리셋된다. 만약 저 발언이 진실이라면 100만점 기록하고 50만점 더 기록한 것. 흠좀무.
- 2009년 루저의 난 이후 루저 대열에 합류하셨다.
자진납세.라디오 듣기 그것도 같이 앉아 있던 텐아시아(당시) 강명석 주필까지 루저로 만들었다. 주필 쪽은 170도 안 된다고. orz. -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시선집중으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자는 예전에 자신이 뉴스 멘트를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입사 초기 기자시절 뉴스 진행 때 울려버리기도 했던 김주하 앵커. 김주하 앵커의 말에 따르면 사석에서는 술도 왕창 마시고 욕도 화끈하게 하는 스타일이라 한다. 흠좀무.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수련회 때 초청강사로 와서 한 이야기 중에 손석희 선배 이야기가 절반이었다.
헐 손빠.사실 이미지가 반듯한 사람일 수록 사석에선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손석희가 특히 그렇다. 방송국 앵커들 중에 손 선배한테 욕으로 싸닥션 안 맞아본 사람 없을 거라고 특히 김주하가 많이 당했나 본데 잘 안 알려진 노조탈퇴 에피소드도 있다.저번에 사고친 JTBC 기자도 얼마나 깨졌을지... - 그 외에 시선집중, 100분 토론을 진행하며 독도 논쟁, 탄핵정국,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토론, FTA 광우병, 촛불정국 등등 굵직한 일들을 다루며 이래저래 상당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는데 자세한 내용을 다음을 참조하자. 100분토론 8년 간의 뜨거운 역사. 조작 문제도 동아일보에서 거론했는데 그건 제작진한테 뭐라 그래야지 사회자가 직접 뽑나?
- 솔직하고 실용적인 성격답게 외형보다 내형,실리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외모를 꾸미는 것에 신경을 안 쓰는 듯하다. 대학시절에 위아래 항상 검은옷만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가난했기 때문에 그럴지도..)이었고, 아나운서 국장시절 차고 있는 손목시계 역시 한때 화제가 되었다. 엄청난 거액의 명품이라서가 아니라 군인들이나 찰법한 카시오 2만원짜리 저가 전자시계라서 화제가 되었다.(가장 위 2011 사진의 시계.) 그것을 보고 많은 네티즌들이 역시 사람이 명품이니까 2만원짜리도 명품이 된다면서 손사마를 외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14]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본문에 첨언하길 20년된 자켓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다른 이미지.
-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겸임 교수를 거쳐서 2006년 2월에 MBC에서 물러난 후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맡았다. 성신여대에선 '말하기와 토론' 수업을 맡고 있었다. 방송과는 달리 워낙 빡세게 가르치는 까닭에 성신여대생들은 이 수업을 '말하기와 토하기'로 부른다고... 수시 논술고사에서 직접 시험 감독을 맡고 있었다는 증언이 디씨 등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과 싸인 공세가 논술고사 끝나고 많이 왔다고.
- 육군군수사령부 본부에서 비서실 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군수사 초청 강연에 온 적이 있을 정도로 군 시절 근무지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다고 한다.
- 2012년 10월 30일에는 웬일인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왔다. 이유가 뭔고 하니 오전 6시에 생방으로 진행되는 시선집중에 1시간이나 지각을 한 것. 지각을 했을 뿐인데 네이버행이다! 지각 이유는 시차적응을 못해 늦잠을 자서. 바로 요전까지 특집이라고 유럽 가서 방송을 하는 기획이 있었고 게다가 덤타로 EBS에서 방송하는 다큐멘터리(3부작인 킹메이커)의 진행을 맡았던지라 귀국하고 시차적응을 못했다고 한다. 인터넷 기사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교수님도 사람이다', '인간적이다' 등의 호의적 반응들이 많다.
지구가 잘 못했네. 왜 돌고그러냐
참고로 손석희가 시선집중을 진행하면서 지각한 전력은 12년 역사상 딱 3회인데 2회는 천재지변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2007년과 2011년의 폭설, 1회가 바로 저 일이다. - 웹툰 작가 윤태호와의 인터뷰에서 윤태호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니까 그건 자기랑 마찬가지라면서 당시 "철인"이라는 만화를 워낙 잘 그렸고 그걸 많이 뿌렸다고 한다. 본인은 만화를 그리면 다른 애들이 숙제를 대신 해왔다고...
- 썰전 12회에서 나온 얘기인데 손석희의 투철한 자기관리 에피소드가 나왔다. 손석희는 출근하면 신문을 보면서 담배를 딱 한 개비만 피운다고 한다. 하루에 딱 한 개비다. 이에 비흡연자나 여자들이 그게 그렇게 대단한거냐며 공감을 못하자 나온 설명은 '맥주 마실 때 나오는 강냉이를 딱 하나만 먹기, 니가 돈이 엄청 많은데 명품점 가서 머리핀 딱 1개만 사기와 동급이다'는 식으로 좌중을 공감시켰다. 하지만 이 소문은 거짓으로 판명 되었는데 이후의 썰전에서 정정하기로 본인이 JTBC 임원 회의 때 자신은 현재 금연이라고 직접 언급했다고 한다.
몹시 억울하셨나 보다. 하긴 끊는 게 쉬운 게 아니지.그리고 썰전 출연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경악하고......... - 손석희를 찍은 사진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헤어스타일이 맨날 같다! 그 이유는 30년 동안 MBC에 있으면서 구내 이발소만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근데 이제 어쩌지? JTBC엔 구내 이발소가 없잖아?하지만 JTBC로 옮기고 난 뒤에도 헤어스타일은 크게 변화가 없다. 그 이유가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아직도 MBC근처에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수십년 만져온 이발사에게 아직도 가위질을 맡긴다고 한다.MBC도 방문할겸 겸사겸사 - 진행에 있어 엄격하게 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이름난 손석희지만 가끔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이 화제가 되곤 한다. 지난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시선집중에서 사고대책본부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관계자가 당시 피해 승객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투의 답변을 하자 손석희는 "그런 말씀하시면 안된다"며 질타했다. 손석희 "지하철 호통"지하철 참사 정곡찌른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또한 위 JTBC 관련 항목에 나왔듯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인터뷰 도중 냉정을 잃은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 침묵
그리고 그 다음날 이어진 사고 관련 보도에서 실종자 아버지와 인터뷰중 방송 하단에 추가 사망자 발견 소식이 나오자 약 5초 동안 인터뷰를 멈춘 채 침묵하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 톤으로 “자막은 넣지 말아 주시고요”라고뉴스 제작팀에 요구했다. -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다이빙 벨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이종인 대표의 인터뷰를 여과없이 방송한 후 별다른 정정보도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자유청년연합 등으로부터 이상호 기자, 이종인 대표와 함께 고발당했다.
- 손석희 교수의 JTBC행이 결정될 무렵, 변모 논객의 미디어워치에서 손석희 교수의 미네소타대학 석사 논문이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손교수는 무대응으로 대처했다. 그리고 별다른 이슈도 되지 못하고 조용히 묻혔다.
- 마사토끼와 도현의 작품인 매치스틱 트웬티에서 '손섷긔'라는 이름으로 오마쥬되었다.
- 개그콘서트에서 '현대생활백수' 의 당하는 역할로 이름을 알렸던 개그맨 강일구는 손석희를 패러디한 '손석회' 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100분 토론을 100초 토론으로 바꾼다든가...
- 손석희가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이 딱 한권 있다. 93년에 출판된 '풀종다리의 노래'라는 수필집으로, 92년 MBC 파업과 자신이 MBC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점들을 서술해놓았다. 93년의 손석희와 현 시점의 손석희는 많은 갭이 있을 순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손석희란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가'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 볼 수 있다. 책 이름인 '풀종다리의 노래'는 MBC 파업으로 손석희를 비롯해 많은 노조원들이 구속되자, 부산 MBC 노조 조합원이자 아동문학가인 배익천씨가 쓴 동화제목이다.
- "뭘해도 안 예쁘겠냐"면서 아이유의 팬을 자처했다. 삼촌팬하기에는 나이가 많으니, 큰아버지 팬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고..5분 55초쯤 부터 나온다#, 해당 방송
- 가수 김종서의 팬이라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시절 김종서 3집 테이프 하나만 들고가서 주구장창 들었다고 한다.
3.1.1. MBC ¶
1985년《1분뉴스》 앵커, 《아침뉴스》 앵커, 《현장85》 앵커, 《청소년 특별기획》 MC
1986년《0시뉴스》 앵커, 《건강 100세》 MC
1986년《여기는 MBC》 앵커
1986년 ~ 1987년 라디오 《젊음의 음악캠프》 진행
1987년 ~ 1989년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15]
1989년《뉴스센터》 앵커, 《장학퀴즈》 MC
1990년《저녁뉴스》 앵커
1993년《생방송 아침만들기》 MC, 《선택 토요일이 좋다》 MC, 《음악이 있는 곳에》 게스트, 《새벽을 연다》 MC
1994년 《뉴스와이드》 앵커, 《비디오산책》 게스트, 《한여름 밤의 재즈 콘서트》 MC, 《1994 MBC 강변가요제》 MC, 《손석희가 여는 아침》 DJ
1995년《뉴스투데이》앵커
1997년 《굿모닝 코리아》 앵커,《손석희의 미국탐험》 MC
1998년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얼굴》 게스트
1999년《아침뉴스 2000》 앵커
2000년 ~ 2013년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
2001년 《와! e멋진세상》 MC
2002년 - 2009년 《100분 토론》
2010년 창사특집 HD자연다큐멘터리 《라이온 퀸》 내레이션
1986년《0시뉴스》 앵커, 《건강 100세》 MC
1986년《여기는 MBC》 앵커
1986년 ~ 1987년 라디오 《젊음의 음악캠프》 진행
1987년 ~ 1989년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15]
1989년《뉴스센터》 앵커, 《장학퀴즈》 MC
1990년《저녁뉴스》 앵커
1993년《생방송 아침만들기》 MC, 《선택 토요일이 좋다》 MC, 《음악이 있는 곳에》 게스트, 《새벽을 연다》 MC
1994년 《뉴스와이드》 앵커, 《비디오산책》 게스트, 《한여름 밤의 재즈 콘서트》 MC, 《1994 MBC 강변가요제》 MC, 《손석희가 여는 아침》 DJ
1995년《뉴스투데이》앵커
1997년 《굿모닝 코리아》 앵커,《손석희의 미국탐험》 MC
1998년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얼굴》 게스트
1999년《아침뉴스 2000》 앵커
2000년 ~ 2013년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
2001년 《와! e멋진세상》 MC
2002년 - 2009년 《100분 토론》
2010년 창사특집 HD자연다큐멘터리 《라이온 퀸》 내레이션
3.2. 약력 ¶
1984년 ~ 2003년 MBC 아나운서 겸 보도국 기자
2005년 ~ 2006년 MBC 아나운서국 국장
2006년 ~ 2013년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3년 ~ 현재 JTBC 보도부문 총괄 사장
2005년 ~ 2006년 MBC 아나운서국 국장
2006년 ~ 2013년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3년 ~ 현재 JTBC 보도부문 총괄 사장
3.3. 수상 ¶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2003년 2003 한국아나운서상 대상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 출연자상
2007년 제3회 한국참언론인대상 시사토론부문
2008년 MBC 브론즈 마우스
2009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
2003년 2003 한국아나운서상 대상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 출연자상
2007년 제3회 한국참언론인대상 시사토론부문
2008년 MBC 브론즈 마우스
2009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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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때 구입한 앨범이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만토바니의 영화 ost 모음집이었다고 한다.
- [2] 무언극 난타 기획자로 유명한 그 송승환 사장 맞다.
- [3] 2007년 2월 대전광역시로 이전.
- [4] 4대 뽀미언니로도 유명하다. 그 덕인지 1995년 뽀뽀뽀 4000회에 가족과 나오기도 했다. 참조.
- [5] 손석희 사진을 찾아보면 웃는 사진이 별로 없다. 위 사진도 네이버에 '해맑은 손석희'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일한 사진이다(...)
- [6] 1대 진행자는 故 정운영(99. 10~00. 6), 2대 진행자는 유시민(00. 7~02. 1).
- [7] 당시 손석희는 MBC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사회자로 쓰려면 많은 출연료를 주어야 했다. 하지만 손석희를 하차시키고 거기에
신동호라던가MBC 소속 아나운서를 투입하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다. - [8] "누가 믿고 뉴스를 보냐. 이제 알았어. 뉴스는 다 거짓말이야. 빨리 (중계차)차 빼."라는 실종자 가족의 발언과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할 때 여러 방송국들의 카메라가 파손 당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팽목항에서는 기성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손석희 앵커가 현지 진행을 시작한 첫날 실종자 가족이 직접 찾아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실종자 이 모 군의 아버지인 이호진 씨가 찾아와 하소연 한 것을 합의 후 방송에 내보냈다.
- [9] 2014년 4월 28일 JTBC 뉴스 9의 시청률은 5.061%. 같은 날 SBS 8 뉴스는 6.0%, MBC 뉴스데스크는 5.6%를 기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TV간의 시청률 표본집단이 달라 정확히 비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여타 종편채널 뉴스의 시청률이 1%대에 불과함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결국 2014년 4월 29일 JTBC 뉴스 9의 시청률이 처음으로 5.401%를 기록하며 MBC(5.4%)를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터넷 시청까지 고려한다면 사실상 JTBC 뉴스 9가 뉴스데스크를 앞질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같은날 SBS 8 뉴스의 시청률은 6.4%.
- [10] 김정은의 만화 '지구생활백서' 에서 외계인설이 제기되었다.
- [11] 2015년에 60세이다.
- [12] 나중에 박원순은 한 인터뷰에서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가 변호사 일에서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JTBC의 '보스와의 동침'에 출연했을 때는 "손석희에게 문제가 있다. (동안이라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농담을 하기도.
- [13] 좀 이상한데 출처확인바람. 불혹은 40을 일컫고 50을 이르는 말은 지천명이다. 손석희 정도되는 인물이 이걸 몰랐을리는 없으니 작성자가 헷갈리거나 그냥 떠도는 소문인 듯 하다.
- [14] 시간을 빨리 확인하는 데에는 전자시계가 더 편해서 그런 것도 있다.
- [15] 영화 퍼펙트게임이 다루는 선동열vs최동원 경기에 대한 보도도 한 바 있다 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fBbFgkjnk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