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대중문화의 아이콘.
본명 | 정현철(鄭鉉哲) |
출생 | 1972년 2월 21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
신체 | 173cm, 55kg, O형 |
소속 | 서태지컴퍼니 |
학력 | 서울북공업고등학교[1] 중퇴 |
가족 | 1남 1녀 중 둘째 배우자 이은성 (2013 ~ ) |
데뷔 |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
공식홈페이지 페이스북 유튜브 채널 서태지 아카이브 |
1. 음반 ¶
- 전체 목록은 서태지/음반 목록 항목 참조
- 서태지와 아이들 1집
- 서태지와 아이들 2집
- 서태지와 아이들 3집
- 서태지와 아이들 4집
- Seo Tai Ji (5집)
- 태지 (6집)
- 7th Issue (7집)
- Atomos (8집)
- Quiet Night (9집)
2. '서태지'라는 이름의 유래 ¶
3. 성장과정 ¶
![8세꼬마태지자고있음.jpg 8세꼬마태지자고있음.jpg](http://rv.wkcdn.ne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9C%ED%83%9C%EC%A7%80?action=download&value=8%EC%84%B8%EA%BC%AC%EB%A7%88%ED%83%9C%EC%A7%80%EC%9E%90%EA%B3%A0%EC%9E%88%EC%9D%8C.jpg)
어린시절 사진들은 눈이작고 어쩐지 지금과 다른 모습이라 최수종쇼에서 본인이 스스로 성형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태지가 베이스 연주자로써의 시작이 되는 하늘벽의 베이시스트가 된 계기도 단지 베이스 기타가 뭔지도 모르던 그 시절에 통기타로 음을 짚어내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음을 짚어내는 것이 베이스 연주자"라는 친구의 말에 베이스 연주자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서태지 생애 첫 밴드 하늘벽 멤버들과 찍은 사진
![하늘벽로고.jpg 하늘벽로고.jpg](http://rv.wkcdn.ne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9C%ED%83%9C%EC%A7%80?action=download&value=%ED%95%98%EB%8A%98%EB%B2%BD%EB%A1%9C%EA%B3%A0.jpg)
컴퓨터로 하늘벽의 로고를 만들었다.
4. 뮤지션 활동 ¶
시나위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 야성미 넘치는 모습.
왼쪽부터 서태지, 리더 신대철, 보컬 김종서, 드러머 오경환.
![idoltaiji.jpg idoltaiji.jpg](http://rv.wkcdn.net/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9C%ED%83%9C%EC%A7%80?action=download&value=idoltaiji.jpg)
작곡가 하광훈 : 참신하지만 리듬은 좋으나 멜로디 라인이 약하다.(8점) 밴드 다섯손가락 멤버였다. 바비킴, 변진섭, 조관우, 이루에게 곡을 줬다. 현재 예당엔터테인먼트 음악본부장으로 임재범의 빈잔을 편곡했다. 그리고 하광훈은 무려 20년이 지난 2011년까지도 악플에 시달리게 되었다.(…)# 작사가 양인자 : 음악은 새로운데 가사의 내용은 진부하다고 지적.(7점) 한국 록계의 초기 거장 김희갑의 부인이자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 드라마 작가 출신으로 김수현 작가의 동기로 한큐에 정리. 방송인 이상벽 : 노래는 섬세한데 과격한 댄스동작에 묻힌거 같다.(8점) 아침마당의 전 수장.[10] 지금은 불교티비에서 프로그램 진행중. 당시 특종 TV연예에서는 연예평론가로 소개되었는데 당시 그에 대한 칼럼을 많이 썼다. 덧붙이자면 세시봉 멤버의 일원이었다. 물론 직접 노래한 건 아니고 당시 세시봉에서 사회를 봤다고. 연예 및 음악 평론은 그 당시부터 시작했다고.. 가수 전영록 : 새장르를 열었다는거에 관심을 표했지만 평가는 시청자에게 돌리겠다.(8점) 황해 & 백설희라는 1950~60년대의 전설적인 배우 & 가수 부부의 아들이자 딸인 전보람은 티아라의 멤버. 자신 자체도 발라드록의 대가이다. 2008년 17집 발매. |
결국 평균 7.8점으로 신인무대 첫회 출연자이자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게 왜 최저점이였냐면 이 프로그램이 끝날때까지 출연한 신인가수중에 평균 8점 이하의 가수는 없었기 때문이다.[11]
당시 평가는 위에 언급된 특종 TV연예 코너의 심사위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랩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매니저를 맡고 있던 최진열의 증언으로는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CD를 줘도 들어보고는 "그런 판데기는 이태원 클럽에나 걸어라"라며 집어던지기도 했고, 주변 선배 매니저들도 망할 것이 뻔하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5. 최근의 행적 ¶
서태지소속사 입장 발표 [13]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104301629174&sec_id=540101
6. 인간관계 ¶
7. 한국 음악사에 남긴 의의 ¶
8. 패션 문화 선도 ¶
9. 서태지 팬덤과 안티 ¶
- 서태지/비판 항목 참조.
서태지 팬덤에 대해서 유난히 극성스럽다, 자부심이 강하다는 지적 또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다. 이 인식이 때때로 강조되어 서태지 팬들이 광신도처럼 인식되는 경향도 있지만 이는 특정 표본 등을 중심으로 설정된 과장된 인식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서태지 팬덤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터넷 등에서의 민간 차원의 갈등 외에도 대형 언론의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 등, 외부에서의 이런저런 형태의 지속적 공격을 받아온 서태지의 팬층이, 반대로 유독스러운 결속력과 방어심리를 보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른바, 까가 빠를 만드는 것이다. 팬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나 곡해된 해석에서 기인한 비판이 주어진다면, 매우 의견이 다른 팬의 입장에서는 항의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사전심의제 폐기 운동, SBS '한밤의 TV연예'에 대한 광고철회운동, 황색언론반대연합, 대중음악판바꾸기위원회,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 등의 활동에 서태지 팬들이 참여하게된 동력의 원천은 서태지와 관련되어 있는 불합리였다. 이로 인한 사회적 성과는 작지 않다고 서태지 팬덤은 말한다.
10. 그외 ¶
- 서태지가 해피투게더에 출연한다.
- 경찰은 서태지 자택침입 사건을 불구속 기소 송치했다.
- 서태지의 골수팬이 자택침입을 했다가 체포됐다.
-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할때, 그의 매니저가 이동중인 차안에서 당시로서는 일반인은 홍콩영화에서나 보던 수백만원대의 비싼 초창기 핸드폰을 직업상 사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된 서태지가 호기심에 그게 얼마냐고 물었고, 특별히 자신에게 말을 먼저 걸거나, 뭔가 일외적으로 다른일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던 서태지의 이례적인 행동에 장난기가 발동한 매니저는 서태지에게 "야, 이거 만원도 넘어...살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말없이 웃던 서태지는 일주일뒤 그 다음번 매니저와 함께 차에 타게 되자 매니저에게 진짜로 만원을 주면서, "그거는 나주고 형은 이걸로 새거하나 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물정에 어둡고 악기 구매할때 물건값 흥정도 못해서 항상 다른사람이 나서서 해야 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시의 수익을 분배할때도 액수를 묻지도 않은채 항상 "부모님에게 보내 달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돈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별명이 서크루지.
그러면서 집에 RC는 한가득 있다. -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이란 곡이 있었다. 음치가수 컨셉으로 데뷔한 개그맨 이재수의 작품(?)이었는데, 망했다. 패러디로서도 후진데다가 서태지한테 고소까지 당해 데꿀멍. 서태지가 음악 저작권 협회를 탈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코믹한 컨셉으로 패러디한 것 때문이 아니라, 창작자인 자신의 동의도 받지 않고 멋대로 패러디 했다는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 서태지는 리메이크곡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음악을 팬들과 자신만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혔다. 가끔 YG엔터테인먼트나 서태지컴퍼니 소속 가수들이 라이브나 방송에서 서태지의 곡을 리메이크하다가, 최초의 레코딩 버전 리메이크로 빅뱅이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의 '필승'을 빌렸다. 후에 응답하라 1994 OST에서 리메이크가 성사되어 성시경이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너에게'를 불렀다. 발라드곡을 발라드 가수가 부른 격. 성시경은 나레이션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 스튜디오에서 보드 장갑에 보드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등으로 우리 나라에 생소하던 스노보더의 복장과 문화를 소개하여 스키장에서 마이너였던 보더들이 스키를 누르고 대세로 올라게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심지어 스노보드 종목인 프리스타일이란 이름의 곡도 있다. 세계적인 스노보드의 유행이 서태지가 등장한 때와 겹친 영향이 더 크지만, 서태지와 아이들도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실제로 서태지와 함께 시나위에 있던 김종서, 이주노[17]는 우리 나라 스노보드와 스케이트보드 쪽에서 거의 1세대이다.
-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없는 가사[18]가 많이 나온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괜찮았지만 솔로 데뷔 이후 그 경향이 심해졌다. 그래서 한 때 팬들에겐 그런 구절들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 것도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좀 많은데, 2집의 죽음의 늪 후렴구 가사 중 '피하지 않겠어' 뒤에 나오는 가사나, 3집의 교실 이데아에서 '그걸로 족해 족해'이후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은 목소리[19], 6집의 탱크에서 0:28에서부터 0:39에서까지 나오는 기타음 같은것이나[20], 심지어는 5집의 Take 3처럼, 가사집을 보지 않으면 가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곡까지 있다!
- 데뷔 초기부터 위천공(위에 구멍이 나는 병. 원인은 여러가지이다. 과로, 과음 등등)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식이나 술자리에선 술은 그냥 혓바닥에 할짝거리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고. 공개적인 행사에서 샴페인을 마실때도 샴페인 거품을 앞니로 깨물기만 하고 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21] 너무 힘들 때는 한 끼 식사를 우유로 떼워야 했다고 한다.
동안과 술을 등가교환 - 병역에 관해서는 여러 말들이 많은데, 94년말 연예인 병역 비리 파동에 따른 수사결과로 94년에 검찰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서태지는 성격장애로 면제, 이주노는 피부과이상(문신)과 정신장애로 면제, 양현석은 병명미상으로 의병제대'이며,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다만 서태지는 인터뷰 등을 통해 면제 사유를 위천공이라고 밝혔고 여기에 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서빠들이 만든 자료에서는 학력 미달도 언급하고 있으나, 당시 서태지가 면제 요건을 충족한다는 근거 이상은 되지 못하며, 가수 데뷔 전인 19세에 받은 신검에서 정식으로 면제받은 사유는 성격 장애이다.
그런데 약 4년 후 수사 당시 상황을 회고한 1998년 6월 29일자 국민일보 이경희 기자에 따르면, "가수 서태지가 만성위염으로,탤런트 배용준이 약시로,영화배우 박상민이 교통사고에 의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면제대상자로 인정됐다."라고 언급했으며, 1994년 당시 수사는 " 사전조사 불충분과 ‘특혜’와는 거리가 먼 대상자를 문제삼는 바람에 유야무야됐다."고 설명했다.(이 기사는 http://www.kinds.or.kr/에 가입하면 볼 수 있다. 어느 기사가 맞는지는 각자 판단하도록 하자.) - 주위 인물과 팬들의 성화로 지금은 담배를 안피운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컨텐츠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하는 성격탓에 흡연장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8집 뮤직비디오의 촬영과정을 담은 다큐에서 자신의 테이블에 담배를 올려놓은 모습이 아주 잠깐 나오는 등 정황은 확인된다. 일반인에게 절대 목격되지 않을 곳에서만 흡연+활동기나 콘서트 준비기간엔 금연 정도로 자제하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한 것 같다.
- 고종 사촌동생 강현구는 강개토라는 예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태지의 영향인지 강개토 역시 본인 음악의 작사, 작곡, 편곡, 연주, 엔지니어링 등 모든 작업을 혼자서 소화한다. 개토네이션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디지털 싱글을 중심으로 7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중이다. 초창기에는 가면을 쓰고 활동했으나 현재는 가면을 벗은 상태. 결혼식 때는 서태지가 그에게 축하화환을 보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매 하는 음악 대부분은 음원 순위 10위권에 랭크 되었으며, m.net 및 곰 tv 뮤직비디오 실시간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삼성, 웅진, 두산, 신한, 우리 등 다수의 기업체 음악작업을 진행했으며, '광고음악의 장르가 신세대들의 소비심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여러 음악 콘텐츠 제작자로써의 활동은 물론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재직중이다.
- 2002 ETPFEST를 개최할때 이미 고인이 된 히데를 섭외하여 초청하였다.[22] 물론 고인이 된 히데는 영상으로 밖에 볼수가 없었고 히데 생전의 SPREAD BEAVER 멤버들이 공연을 펼쳤다. 이는 히데의 첫 해외 공연으로 남게 되었고 유족들은 해외 진출을 열망하던 히데의 꿈을 이루어준 서태지에게 고인이 생전 애용하던 옐로하트 기타를 선물했다. 일종의 바톤 터치의 의미라고도 하고, 박물관에 있느니 좋은 음악인에게 연주되길 히데도 바랄 것이라는 말과 함께.[23] 히데의 부모님은 리셉션장에서 서태지를 만났을때도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 국산 댄싱 리듬게임 펌프 잇 업 시리즈의 제작사 안다미로에서 서태지의 곡을 수록하려 했다. 난알아요/필승/하여가/우리들만의추억/울트라맨이야 등이 범주에 올라서 서태지컴퍼니측에 연락을 넣었는데 수록은 하되 게임에 수록되는 사운드 부분을 직접 편집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펌프 잇업에 수록된 서태지의 모든 노래는 모두 서태지가 직접 편집을 한 뒤 안다미로에 보낸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자기 노래는 제대로 된 속도에 제대로 된 노래여야 한다며 러쉬 모드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단한 프로정신.[24]
- 우스개로 서태지가 컴백하면 음악 평론가들도 컴백한다는 소리가 있다.
- 가수 원미연은 서태지에게 곡을 받은 유일한 여자 가수이다. 원미연의 3집 수록곡인 '그대 내 곁으로'가 바로 그 곡인데, 원미연은 생각만큼 그 노래가 히트하지 못해 서태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유가 2014년에 서태지가 작사, 작곡, 편곡한 소격동을 내면서 아이유와 함께 유이한 여자 가수가 되었다.
- [1] 현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 [2] 청와대와 아주 가까운 지역이라 민방위 훈련때는 군인과 탱크까지 쫙 깔리는 살벌한 동네였다고 한다. 어린시절 탱크를 따라다니면서 놀기도 했다고.
- [3] 이동연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때리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잘못을 했어도 절대로 교사한테 맞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교사가 자신을 구타하려고 하면 학교를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반항아.
- [4] 정통 메탈을 고집하던 리더 신대철과 달리 김종서는 대중적이고 듣기 편한 록을 주장했고, 서태지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신대철은 서태지에게 고전 록밴드들도 들어보길 권유했으나, 서태지는 고전 락밴드를 듣는 것을 고역처럼 여겼고, 새로운 장르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 [5] 악동클럽에 나온 강승호라는 사람이 대표인 기획사다.
- [6] 시간이 흐른 뒤 강승호 대표는 엠넷 비틀즈코드 2011년 6월 23일 방영분에 출연해서, "그 당시 악기 만지는 걸 좋아하던 서태지가 다른 회사에 갔다가 레코딩용 콘솔을 보곤 나와 계약을 못하겠다고 통보해왔다"며 아쉬워했다.
- [7]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일본 공연을 하면서 지켜 본 바로는 서태지의 일본어 실력은 능숙해서 통역없이 혼자 일본에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 [8] 재밌는건 개그맨 지석진도 무명가수 시절 부른 '난 알아요'라는 곡으로 거쳐가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
- [9] 흔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를 특종 TV연예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 매니저를 맡았던 최진열씨의 증언으로 그 이전에도 많은 매체에 출연했다고 한다.
- [10] 공교롭게도 11년 경력의 아침마당을 첫시작한게 고작 이 프로그램 나온지 5일 전이었다.
- [11] 정확하게는 '8점 셋, 7점 하나'로 평균 7.75지만 끝의 5를 반올림해서 7.8로 발표했다. 그 당시 매니저 최진열이 방송 끝난후 방송국에서 "기껏 출연하라고 해놓고 엿먹인다"라고 흥분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서태지는 이 프로그램에서 쓰는 음악도 맡았다.
- [12] 이지아의 본명은 김상은이다.
- [13]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서태지 씨는 1993년 미국에서 지인의 소개로 상대방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 후 한국과 미국에서 서로 편지와 전화 등으로 연락을 하며 서로에게 점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96년 서태지 씨의 은퇴 이후 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7. 10. 12. 미국에서 둘만의 혼인신고 마치고 부부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성격과 미래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 2년 7개월 만인 2000. 06 경 양측은 별거를 시작했으며 결국 헤어지는 수순을 밟고 다시 각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별거초반에 서로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바 있으나 이를 극복하지 못했고 서로 완전히 헤어지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14] 이미 정태춘 등에 의해 위헌제청 걸리고 거대 여당이 폐지확정 발표를 한 시점에서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최후의 발악을 한 것에 불가하지 사실 시대유감이 해당 사건에 공헌한 부분은 폐지에 관한 실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전심의의 부당함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렸다 정도로 국한될 수 밖에 없다. 꼬마 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이 해당 사건을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도 1995년 11월 8일인데 사전심의 폐지법안이 당시 여당인 민자당에 의해 발의된 시점은 10월 28일으로서 오히려 빠르고 본회의를 통과하여 개정공포된 시점은 1995년 11월 17일이고 실제 시행된 점은 7개월 뒤인 1996년 6월이다. 당시 소수야당이던 꼬마 민주당의 주도로 서태지의 인기를 등에 엎고 2~3주도 안되는 시점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스토리와 수년간 정태춘 등의 민중가수가 위헌제청(1994년 4월) 및 국회 공청회(1995년 8월 29일)를 하고 거대 여당의 폐지 합의(1995년 8월 30일)를 얻은후 수개월동안 조율끝에 거대 여당의 법안 발의(10월 28일), 본회의 통과(11월 17일)로써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스토리중 어느 쪽이 그럴듯한지 한 번 자문해보자.
- [15] 대체적으로 노이즈라고 알려져있다. 6번 항목 참조
- [16] 노브레인은 멤버의 탈퇴와 교체로 밴드의 방향성이 달라진 경우에 속한다.
- [17] 이주노의 소속가수 영턱스 클럽의 멤버 송진아는 심지어 이주노의 영향때문에 스노우 보드에 빠져 나중에 가수 때려치고 스노우보드 선수가 되었음.
- [18] 잘 안들리든지, 아니면 분명히 가사는 가산데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다.,
- [19] 내 사투로 내가 늘어 놓을래 로 추정된다. 아니면 내 사투가 아니라 내 사투리라 추측하기도 한다.
- [20] 근데 이건 히든가사 보다는 단순한 몬더그린일 가능성이 더 높다.
- [21] 그러나 전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어려운 자리에서도 체면을 생각해서 술잔을 입에대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했는데도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것 보면 위가 안좋아서라기 보다 술에 취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듯.
- [22] 여담이지만 같이 X JAPAN의 멤버였던 파타와 히스도 Dope Headz라는 밴드의 멤버로 참석했다. 후기 영상을 보면 서태지와 대화를 나누는 파타를 볼수 있다.
- [23] 간혹 과격한 히데 or 엑스재팬의 팬들이 실제 기타가 아니라는 반론을 펴기도 하는데 이는 당시 함께 있던 스탭의 후기가 공개되면서 급짜식됐다.그리고 그냥 페르난데스 시그네이쳐 모델이라면 돈 있는대로 있는 서태지한테 굳이 선물을 하겠는가? 악기 구입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서태지인데 말이다.
- [24] BGA, 스텝, BPM측정까지 모두 다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건 사실무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