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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교황)

라틴어Franciscus PP.
이탈리아어Papa Francesco
그리스어Πάπας Φραγκίσκος
스페인어Papa Francisco
포르투갈어Papa Francisco
프랑스어Pape François
영어Pope Francis
독일어Papst Franziskus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프란치스코.jpg
2012 -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프란치스코 교황[1]

교황명프란치스코 (Franciscus)
세속명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Jorge Mario Bergoglio)[2]
출생지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생년월일1936년 12월 17일 (선출 당시 78세)
재위기간2013년 3월 13일 ~ (현재)
즉위미사2013년 3월 19일

역대 교황
265대 베네딕토 16세266대 프란치스코현직

교황 선출 직후 이탈리아어로 첫 강복을 하는 프란치스코.
다른 교황들과는 달리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모제타를 입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stemma-papa-francesco.jpg
프란치스코의 문장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3개의 줄이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예수회 문장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남편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Spikenard) 꽃이 새겨져 있다. 추기경 때 문장과 다른 건 하얀 별과 나르드가 금색으로 바뀐 것 뿐. 아래에 사목표어가 쓰여 있는 것도 이례적이다.

목차

1. 개요
2. 프란치스코란?
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
3.1. 출생과 성장
3.2. 흑역사?
3.3. 추기경 시절
3.4. 교황 선출
4. 성품
4.1. 개인적인 면
4.2. 공적인 성향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
4.2.2.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
5. 재위기간
6. 바티칸 개혁행보
7. 2014년 한국 방한
8. 기타
8.1. 홀리 슈퍼게임

1. 개요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으로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남반구·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시리아 출신인 제90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만의 비유럽권 국가 출신 교황이다.

사목표어는 성 베다의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한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

2. 프란치스코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은 역사상 최초인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른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13세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세운 수도자로, 부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상속 재산을 모두 포기하는 등 가난을 몸소 실천하였고, 이후 수도생활에도 청빈을 강조했다.

전임 교황의 이름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교황명으로 정한 것은 요한 바오로 1세 이후로 35년 만인데, 요한 바오로 1세도 요한(23번)과 바오로(6번)로 각각 나누어서 보면 이미 많이 사용되어 왔던 이름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사용된 적이 없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913년에 즉위한 제123대 교황 란도 이후로 딱 1100년만이다. 교황은 교황명을 이렇게 정한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밝혔는데콘클라베에서 3분의 2 득표를 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아있던 브라질 상파울루 명예주교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안고 입맞춤하며"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순간 프란치스코 성인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선출 당일 한국 언론에서는 프란치스코 1세, 프란시스코 1세, 프란체스코 1세 등 중구난방으로 표기했으나, 바티칸과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입장에 따르면 올바른 한글 표기는 프란치스코, 정식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1세'가 아니라 그냥 '프란치스코' 이며, 훗날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쓰는 다른 교황이 나온다면 그 때 가서야 프란치스코 1세로 불리울 것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사실 원래 이게 맞는 건데 요한 바오로 1세 때가 이례적이었다 보면 된다[3].

3. 교황이 되기 전의 생애 

3.1. 출생과 성장 

1935년 12월 12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베르골료 부부의 결혼 직후.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마리오 호세 베르골료(Mario José Bergoglio)와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Regina María Sivori) 사이에서 1936년 12월 17일에 태어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 졸업하고 예수회에 입회해 32세에 수도사제가 되었다. 젊은 시절 경위가 불분명한 폐렴 합병증으로 한쪽 를 절제해 50년 넘게 한쪽 폐로 살고 있다. 한때 바운서로 일한 적도 있다 한다. 헐, 바운서를 할 정도라면 싸움 실력이 있다는 얘기인데…

사제가 되기로 한 계기가 조금 독특한데,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말리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러브레터를 건네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받아주지 않으면 신부가 되겠다"고 청혼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관련기사). 신부된 김에 교황까지 이 아말리아 노인은 60여 년이 흐른 2013년 그가 교황이 되자 말 그대로 기절초풍했다. 그녀가 자랑스레 공개한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 다른 여자 친구가 없었는지는 미지수라고. 청소년기 탱고를 같이 춘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단순히 실패한 고백 때문에 사제 서품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다.

3.2. 흑역사?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에 대해 침묵했던 전적이 있다는 비난을 받았고 관련 건으로 인권단체에서 2010년도에 고발된 적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 2명이 독재정권에 납치되어 고문당한 사건에 침묵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이 아르헨티나 군부 유력자의 가족신부 등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독재자들에게 사적으로 선처를 호소하였고, 두 사제는 결국 풀려났다고 밝혀졌다.

비겁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쿠바의 가톨릭 사제들도 택하고 있는 나름의 실용적 전략이다. 당장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직접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타협과 조정을 통해 어떻게든 사람들을 돕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게다가 교황이 군사독재에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며, 군부의 살인부대에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자신의 여권을 주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개인적인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다.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성직자들이 '애국주의' 선언을 통해 군사독재와 결탁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지만, 이건 상황에 따른 것이다. 독재와 인권탄압 수준에서 당시 아르헨티나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전두환이 그냥 커피라면 라틴 아메리카의 군사독재는 TOP이기 때문에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다. 정부를 비판하면 코렁탕 정도가 아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자루에 넣어져 대서양에 수장되거나 생매장으로 끔살당한다. 즉, 적극적으로 전면저항에 나설 경우 프란치스코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례로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당시에는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지던 당일 그 시각에, 그 경기가 치러진 경기장 바로 옆건물에서 호르헤 비델라 정권 반대인사를 고문하고 있었다. 물론 이보다 더한 건 역사적으로 따지면 아돌프 히틀러나 옛 조상 나라의 선배뻘인 스페인의 프랑코 정도이고, 동시대로 따져봐도 칠레의 독재정권이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을 압도하긴 했지만, 당시의 아르헨티나가 살인적인 군부독재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국가에서 추기경이 공개적으로 정권에 대한 반대를 조직한다면 교황청과 타 가톨릭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생명에 위협을 미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에 언급된 자신의 여권으로 독재에 탄압받는 정치범을 국외로 탈출시켜주는 행위도 들켰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한 정치범 생존자는 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너무나 침착하게 선뜻 도와서 "자기가 어떤 곤경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정말 알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비슷한 예로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에서는 1970년대에 독재에 저항하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 중에 대중의 눈 앞에서 사살당했는데도 범인들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엉뚱한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다.[4] 요한 바오로 2세가 맞서 싸웠던 공산당이나 김수환 추기경과 대립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 통하기라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였던 교황은 "(군부에게) 믿음을 심어줘서 누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2014년 즉위 1주년을 앞두고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뒤에서는 은신처를 제공하고 해외도피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최소 20~30명, 최대 100명까지 반정부 인사들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3만 명이나 희생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참상에서 수십 명 구했다는 것이 침묵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분명히 나은 행동이며, 위쪽 문단에서도 설명했듯이 은신처는 물론 해외도피까지 실제로 도왔다는 점에서 자신의 위험도 기꺼이 무릅썼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특히나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벌일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를 생각할 때 이 정도면 꽤 선방한 것이다. 일개 하급 성직자가 일국의 대통령을 상대로 큰 무언가를 뽑아내길 바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욕심이다. 대한민국 식으로 따지자면 시골 본당의 주임신부 하나가 대통령을 상대로 벌이는 행동인데 그 상황에서 일개 시골 성당의 주임신부가 일국의 대통령을 상대로 맞짱이 가능할 리 없다. 그걸 시도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자루에 담겨져서 대서양 한복판에 버려졌겠지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교황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비판은 비판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아무튼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일.

3.3. 추기경 시절 


추기경 재임 시 아르헨티나 동성결혼 법안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인권단체의 비판이 많았다. 반대운동 때 동성결혼과 피임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에게 중세적 마인드를 가진데다가 이단심문관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덕분에 서로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추기경 시절인 2012년 성명을 통해 대통령을 독재를 노리는 선동꾼이라고 비난하였다. 페르난데스는 전직 페론주의자로 실제로 후안 페론 = 이사벨 페론 부부에 이어 아르헨티나 2번째의 부부 대통령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동성결혼 합법화 및 입양조건 동등화는 상하원 모두에서 통과되었다.

교황이 수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 교황이 비난했던 것은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통치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어휘가 강했을지는 몰라도 타당한 비판이다. 행정법을 공부하면 약간이나마 언급되는 부분인데, 원래 행정명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우회하여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단골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법을 통한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당장 조지 W. 부시가 행정명령을 애용했다.

2008년 12월 12일 루얀에서.
추기경 주제에 VS 5년 뒤에 두고보자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좀 도와줘요 VS ㄲㄲㄲ
그런데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이 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그에게 포클랜드 섬에 대해 영국의 군사적 증강을 막고 자신과 대화 창구를 놓아달라는 개입 요청을 하였다. 교황의 공식 반응은 아직 없지만, 영국은 교황은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주권 국가 사이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덕분에 가만 있다가 불똥이 튄 격인데, 이래저래 악연인 듯.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통해 가톨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2015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3.4. 교황 선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에 치러진 콘클라베 이틀째인 2013년 3월 1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청이 부패 스캔들과 섹스 스캔들로 홍역을 치른만큼 개인적으로 청렴하고 교리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 듯. 그동안 거론되던 주요 교황 후보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아예 없던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비유럽파 추기경들은 개혁적인 교황을 원했으나 적절한 후보를 내지못한 상태에서 콘클라베에 돌입했다고 한다. 투표 전에 모든 추기경들이 소신을 피력하는 개인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회가 본연의 영적인 임무에 돌아가야 한다고 피력한 것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의 이런 피력을 계기로 개혁파 추기경들이 그에게 주목했고 뒤이은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투표가 진행돼서 개혁파 추기경을 중심으로 의견이 정리되고 미국의 추기경인 우얼 대주교가 미국 표를 끌어모으고 일부 유럽표가 그에 가담하면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수월하게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가디언 지의 추측으로는 전 교황 선출 때도 이미 득표 수가 2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례적으로 빠른 콘클라베의 결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 때문에 퇴위했음에도 고령인 프란치스코가 선출된 것을 놓고 추기경단이 '몇 년 간의 시간벌기'를 선택했다는 관측이 있다. 한편 그의 선출에 베네딕토 16세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음모론도 나왔다.

그의 교황 취임을 두고 흑인 교황을 기대했던 아프리카에선 섭섭해하는 분위기이다. 이탈리아 교황을 바랐던 이탈리아에선 아쉬워하면서도 이탈리아계 이민자 교황이라서 좀 낫다는 분위기. 물론 남미에선 역사상 첫 남미계 교황이라고 기뻐하는 분위기이다.

4. 성품 

4.1. 개인적인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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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지하철에 탑승한, 추기경 시절의 교황.
영국배우 조나단 프라이스와 똑같다며 외국에서도 난리.
교황의 산 로렌소 회원카드

개인적인 성품은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편이라고 한다. 추기경 시절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기 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을 정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동은 거의 항상 사복 차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식사는 직접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요리해서 먹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되자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처럼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 놓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해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취미는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자국 리그의 팀인 CA 산 로렌소의 열성적인 팬이며 회원이기도 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교황을 위해 오직 교황 한 사람만을 위한 A매치를 치르기로 했다. 2013년 8월 14일에 교황을 위해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가톨릭의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평가전을 치르기로 양 국가의 축구협회에서 합의를 봤다. 이 경기는 교황 프란치스코 본인은 물론 바티칸 시국 교황청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직접 관전했다.

그런데 경기 당일 양팀의 주포인 리오넬 메시와 마리오 발로텔리 둘 다 부상으로 결장했고, 리오넬 메시 대신 에릭 라멜라가 들어갔다. 경기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2-1 승리. 전반전에 일찌감치 이과인이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에 바네가가 추가골을 넣었다. 이탈리아에서는 2골을 먹은 이후 인시녜가 만회골을 넣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4.2. 공적인 성향 

교리나 문화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지만 가톨릭 교회 전반적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심히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이는 해방신학에 부정적이라는 등 지나치게 개별 이슈로 보수성을 몰아가는 측면도 크다. 되려 아래에 제시된 사례처럼 미혼모가 낳은 자녀에게 세례 주는 것을 거부하는 사제들을 비판했으며, 콘돔 사용을 반대해서 홍역을 치룬 베네딕토 16세와는 달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밝힌 적도 있다고 하여 아주 꽉 막힌 사고의 소유자는 아닌 듯하다. 더구나 재임 중 해방신학의 창시자를 초청하여[5], 교황청 기관지 <옵서바토르 로마노>에서 해방신학이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콘클라베 시기 가디언지에서 정한 기준에서도 "Moderate"(온건한)에 속하는데, 진보-온건-보수에서 중간 정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Moderate(온건)-Conservative(보수)-Ultra Conservative(강경보수)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진보적인 것이다. 참고로 'Papabile'라고 표기된 교황 가능성이 있는 인물 가운데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제외하고 moderate는 거의 없다. 교황청 개혁에 적극적이면서 스캔들에도 해당 안 되는 인사라는 점에서도 베르골료 추기경은 두드러진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기작가는 "그는 해방신학자는 아니지만, IMF에 반대하며, 신자유주의에도 반대한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여 아르헨티나의 빈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외국의 반응들도 전반적으로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지도자로서는 대중적인' 교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외신마다 평가가 갈리는 편인데,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각하는 진보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라는 지적이 있다. 꼬리표를 뭐라고 붙이든 간에,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적이며 공동체의 가치와 평화를 중시하는 성향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11월 27일 펴낸 교황 권고에서는 자본가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비난하면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규정하고, 가난을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교황명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청빈을 강조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 보인다.

4.2.1. 사생아,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사생아에게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례를 줬다. 가톨릭에서 사생아를 사람 대우하지 않는 것이 중세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격. 또한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길 거부하는 신부들을 비판했다.

결혼의 신성함 속에서 잉태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미혼모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성직자들이 우리 교구에 있습니다. 
이런 성직자들은 현대의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은 권력으로 교회를 오염시키는 자들이며, 주님의 백성들을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사생아들을 아이를 주신 분께 돌려보내지 않고 이 세계에 낳을 용기를 가진 불쌍한 소녀들은 이런 성직자들 때문에 세례를 받으려고 여러 교구들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커플의 입양 허용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 개개인들을 탄압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거기에 2001년에는 에이즈 환자의 발을 손수 씻기고 키스해 주었다.# 또한 아르헨티나에서 동성결혼 법안에 반대운동을 주도할 당시 동성결혼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커플은 인정하는 시민결합(Civil Union)이라는 타협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교회가 교리에 얽매여 신자들을 정죄하는 것보다는 교리와 실제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의 처지에 대한 배려를 조화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가톨릭 교회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태도가 주목된다.

4.2.2. 무신론자들에 대한 관용 

무신론자로 밝힌 라 레푸블리카의 공동 설립자 유제니오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할지'를 물었고, 교황은 하느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서 답변했다고 한다. 예수쟁이 피꺼솟 하는 말씀

일찍이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2001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에 출연하여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예를 들며 이러한 견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는 교황과 추기경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표명한 가톨릭 신자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교회의 공식입장이다. 물론 가톨릭 교회 내에도 이런 생각을 거부하는 소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논조는 종교가 아예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천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정체성이자 핵심 교리이기 때문. '무신론자들도 양심에 따라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비록 생전에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더라도 연옥을 통해 참회와 정화를 마치고 믿음을 받아들이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자세한 건 연옥 항목 참조. 그렇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말이나 하던 사람들을 계속 봐온 비종교인들 입장에선 저 말만으로도(…) 감동의 쓰나미


5. 재위기간 


교황 선출 직후 첫 강복(우르비 에트 오르비)을 통해 전대사를 선포했다. 인터넷 영상을 통해서도 전대사를 받을 수 있으니 위 영상을 보고 교인이라면 꼭 받도록 하자.

6. 바티칸 개혁행보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의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직접적 원인이 바티리크스 사건이었다면 더욱 근본적 원인으로는 바티칸 내 최고행정기구인 교황청의 관료제적 폐해와 부패라는 분석이 있었다. 국무원장과 궁무처장을 겸임한 반개혁파 타르치시오 베르토네가 이탈리아 출신들을 대거 요직에 앉혀 사실상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으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출신-교황청 관료-반개혁 세력이 온갖 부패와 전횡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사실상 고립되어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려고 했으나, 바티칸 은행을 관할하는 타르치시오 국무원장의 음해와 방해로 실패했다고 한다. 교황청의 2인자 비가노 대주교 역시 교황을 보필하여 교황청 개혁 작업에 나섰으나, 이후 타르치시오 국무원장에 의해 상대적으로 한직인 미국 주재 교황 대사로 유배발령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교황과 비밀편지를 주고받던 비가노 대주교와 교황의 집사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조직적으로 비밀편지를 유출한 것이 바티리크스라는 분석이다. 이는 바티리크스의 배후로 알려진 파올로 가브리엘레 집사가 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8년의 징역형까지 가능했으나 18개월의 징역형만을 선고 받았고 그나마 2개월 후 교황에 의해 사면됐다는 정황으로도 방증됐다. 요컨대 부패척결을 위해 신임했던 개혁파 비가노 대주교와 가브리엘레 집사가 교황청에 의해 무력화되자 자진사임했다는 것.[6] 이후에도 바티리크스의 처리과정에서도 타르치시오 베르토네가 도청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차기 교황은 바티칸을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교황 유력후보였던 밀라노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과 안젤로 소다노 수석추기경으로 대표되는 교황청의 반발에 의해 이탈리아 추기경 표가 갈려 밀려났다고 한다. 이상의 연합뉴스 링크에 의하면 바티칸 내부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이전투구가 쿠리아 세력의 '질투와 경쟁심' 때문이었다고 하니 내부분열은 상당했던 모양. 결국 비유럽파와 개혁파의 응집에 의해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정황이 제기되었고, 따라서 이들의 지지를 업은 프란치스코에게 교황청의 개혁과 부패 말소는 숙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신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에서도 부패척결과 관료주의 타파를 새 교황의 대표적인 직면과제로 꼽았다.

이와 관련한 프란치스코의 개혁 행보에 관해서는 프란치스코(교황)/개혁 항목 참고.

7. 2014년 한국 방한 

해당 항목을 참조.

8. 기타 

성 말라키의 예언에 따르면 예언에 명시된 마지막 교황. 그런데 예언 내용인 '로마인 베드로'가 어떻게 꿰어맞춰도 맞는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다들 잊은 듯.교황청이 말라카이의 예언이 가톨릭 교회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예언 내용 자체가 찝찝해서 일부러 입에 담지 않는 느낌도 든다. 마지막 교황은 흑인 교황이라던 출처 미상의 떡밥[7]도 분쇄되었고 결국 '교황이 그래도 이탈리아인이지 않냐는!'이란 식의 우기기만 남았다고 한다.

국내의 진보성향 잡지 시사in에서는 지도자의 격은 집단 전체를 달리 보게 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사in의 진보적인 성향과 교황의 행보를 연결시키면 저런 평가가 나올 만하다는 중론.

어렸을 적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로 유명한, 미국 HBO의 유명한 토크쇼 호스트 빌 마허(Bill Maher)는 프란치스코가 교황에 취임된 이후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행보를 할 때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교황은 무신론자일 거야 ㅋㅋㅋ"나 "지금 바티칸에선 독약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8]같은 농담을 하면서 그의 행보를 칭찬해주었다. 다른 가톨릭계 토크쇼 호스트인 스티븐 콜베어[9] 역시 빌 마허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반응을 매번 보여주었다.

교황이 일반 사제 복장을 갖추고 몰래 바티칸을 빠져나와 노숙인들을 만나는 등 잠행을 한다는 설이 돌았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교황이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고, 추기경 시절 실제로 밤에 몰래 나와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함께 나눠먹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하지만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면 으레 하게되어있는 인터뷰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미국의 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교황을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소박하고 검소한 백색 수단에 수수한 검은 구두를 신은 차림새가 교회 개혁을 위한 행보에 부합하며 교황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호평했다.


씀씀이가 매우 소탈하고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50달러도 안 하는 저렴한 스와치 시계를 사용하며, 이동 간에 사용하는 차량으로 평범한 소형차를 이용한다. 으레 교황용 의전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특수개조 SUV차량을 이용해온 것이 관례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고급차를 마다하고 16,000달러도 안 하는 구형 포드 포커스 차량[10]을 이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터뷰에서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이 고가의 최신 차량을 타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업무 목적으로 자동차가 필수적이긴 하지만, 고가의 비싼 차를 구입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이 굶어죽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라며 성직자들의 사치 자제를 몸소 주문하였다. 2013년 남미 방문 때에도 소형 피아트를 의전차로 사용했으며, 2014년 여름 내한 때에도 한국산 소형차를 의전차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기아 쏘울을 의전차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에 벤틀리 타시는 먹사님이라든지, 에쿠스만 고집하는 국K-1님들도 좀 배워야 해 그런데 정작 쏘울도 국내에서는 그다지 작은 차가 아니라는 것[11]

이런저런 면이 합쳐져서 상당히 인기가 많은 교황이다. 당장 리그베다 위키에도 하위문서가 있는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일하다. 하지만 개혁적이고 동성애자 및 무신론자들에게 관용적인 면 등으로 인해 극렬 안티가 많고, 심지어는 적그리스도 소리까지 듣는 교황이기도 하다. 물론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환영하며 많은 비종교인들은 그에게 매우 큰 감동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퇴위와 연관시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의 재임기간을 종신제에서 임기제로 바꾸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언급도 한 바 없지만, 만약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자처럼 선종이 아닌 생전 퇴위를 선택한다면 가톨릭 내에서 교황 임기제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추기경 曰: 교황은 로마나 워싱턴에 있는 선출직 공무원 따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2014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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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성하께서 성전을 원하신다! 준비하자!!!(…)

번역기 하나가 교황성하를 폭군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르바노 2세의 재림 사실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2번 강조한 것 뿐이다.

2014년 5월 5일/12일자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기사를 쓴 사람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http://time.com/70826/pope-francis-2014-time-100/.


8.1. 홀리 슈퍼게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7경기가 말 그대로 바티칸 동족상잔 매치[12]였던지라 바티칸 트위터에서 이런 이미지를 유머로 올릴 정도였고 이런 이미지가 올라와서 진짜 따로 본…줄 알았는데, 해당 글의 리플에 달린 링크를 보면 저 사진은 2013년 5월 4일에 보도된, 전혀 다른 일의 사진이다. 홀로 외로이 앉으신 교황님 귀요미 그래서 메시에게 버프를 걸어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치트가 다 있나(…)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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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대결이 성사됨으로 인해, 전/현직 교황이 선출된 국가간의 홀리한 슈퍼매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젠 경비병과의 대결이 아니라 전직 교황과의 파이널 스테이지!!! 전직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는 독일 출신의 요셉 라칭어 추기경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히 스케일이 커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교황청은 "교황께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이 경기를 관전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며 베네딕토 16세의 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도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결승전을 직접 보지 않고 먼저 주무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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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다. 기사
  • [2] '베르골리오'라는 표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지침에는 이탈리아어식으로 '베르골료(/berˈɡɔʎʎo/)', 에스파냐어식으로는 '베르고글리오(/βerˈɣoɣljo/)'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다. 가톨릭 굿뉴스에서는 '베르골료'로 표기하고 있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비록 이탈리아계더라도 에스파냐어를 쓰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을 들어 에스파냐어식인 '베르고글리오'로 표기를 심의하였다.
  • [3] 해당 항목에 자세히 나오지만 전임 교황들인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를 본받겠다는 이유로 두 개의 이름을 나란히 붙인 이름을 처음으로 썼고, 거기에다 스스로 '1세' 를 덧붙인 것은 처음.
  • [4] 로메로 대주교 암살범들은 후에 미국에서 대주교의 유족들의 고발로 재판을 받아 유죄판결이 나기는 한다.
  • [5] 신앙교리성성 장관 뮐러 추기경의 출간기념회에 연사로 나왔으며 교황이 직접 초대했는지의 언급은 없다.
  • [6] 프레시안과 동아일보의 보도 참조.
  • [7] 좋게 말해서 떡밥이지, 흑인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인종차별적 모욕이다.
  • [8] 개혁적인 행보를 보이다가 교황 재위 33일만에 선종한 요한 바오로 1세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론과 관계가 있는 농담인 듯하다.
  • [9] 아일랜드 출신의 후손답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스스로를 세계 최강의 가톨릭이라고 부른다. 교황도 제쳤다는 뜻. 가톨릭 사제나 신자와 교리 및 성경 지식에 관한 논쟁에서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자기가 국가 수반으로 있는 콜베어네이션(Colbertnation)의 전임 사제도 예수회 출신이다.
  • [10] 국내 수입 판매가격 기준으로도 그랜저보다 훨씬 저렴한 차
  • [11] 여담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 당시 국산 경차 및 소형차로 택한다는 소식에 국내 중-소형차 4사 관계자들이 긴장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 의전차로 선정될 시의 홍보효과를 노릴수 있기 때문. 특히 경차를 만드는 한국GM과 기아자동차가 큰 관심을 보얐는데 최종적으로는 경비 문제 등으로 기아 쏘울이 의전차로 선정되었다.
  • [12]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하필 바티칸 경비는 스위스 용병들이 맡아가지고… 거기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명한 축구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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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자료는 엔하위키 미리에서 가져온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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