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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끄트머리 사무실
2015. 1. 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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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변신 자동차 또봇의 등장인물은 차두리(변신 자동차 또봇) 참조. |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축구 해외파 선수들
올림푸스를 끝장낼 기세의 두리토스[1] | |
FC 서울 No. 5 | |
차두리 (Cha Du-Ri) | |
생년월일 | 1980년 7월 25일 |
본관 | 연안 차씨 |
가족 | 아버지 차범근, 어머니, 누나, 남동생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독일 프랑크푸르트 |
포지션 | 수비수 |
신체조건 | 181cm, 79kg, O형 |
등번호 | 5번 |
프로입단 | 2002년 바이어 04 레버쿠젠 |
소속팀 |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2~2004)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2002~2003)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3~2006) 1.FSV 마인츠05 (2006~2007) TuS 코블렌츠 (2007~2009) SC 프라이부르크 (2009~2010) 셀틱 FC (2010~2012)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12~2013) FC 서울 (2013~) |
국가대표 | 2002~ , 69경기 / 4골 |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 |||||||||||
FW 이동국 | FW 산토스 | ||||||||||
MF 임상협 | MF 고명진 | MF 이승기 | MF 한교원 | ||||||||
DF 홍철 | DF 윌킨슨 | DF 김주영 | DF 차두리 | ||||||||
GK 권순태 |
2. 선수로서 평가와 경력 ¶
200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중 피지컬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
한국 축구가 아시아권에서는 피지컬 깡패급이긴 해도 세계무대에서 수준급이라고 보긴 어려운 편이지만, 차두리는 그 중에서도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설수 있는 막강한 피지컬이 장점인 선수로 차이콘, 폭주기관차, 차미네이터,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인간흉기, 인간수류탄, 차두리스크, 발업질럿, 차드로이드 등의 별명이 있다. 현재는 역시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죽하면 2002 월드컵 기간에 상대 선수와의 충돌대비 훈련하던 도중 이영표가 차두리에게 부딪혀 부상을 입고 조별예선 2경기 결장한 일화가 유명하다.[2] 이 무지막지한 몸은 아버지 차범근이 어릴적 잘 먹지 못했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자식들만큼은 잘 먹이고 싶어 어릴 때부터 고기를 잔뜩 먹여가며 만든 몸이라고 한다.[3]
세계 최고급의 피지컬과[4] 무시무시한 스피드, 가공할 순간 돌파력을 갖춘 선수였다. 비록 은퇴 직전이긴 했지만 독일 최강의 하드웨어로 손꼽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도 리그 경기에서 차두리를 상대하다가 벌렁 나자빠질 정도. 하지만, 기본기와 구력이 떨어져서 어느 순간 공과 따로 놀거나[5]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문제가 있다.

처음 포지션은 공격수였으나(스트라이커)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었지만 개인기와 경기조율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라 써먹기가 참 애매한 선수였다. 아버지 차범근 감독이 자신이 바빠서 어렸을때 제대로 봐주지 못한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너무 좋다보니 감독들을 유혹했고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이 수비수 전향을 권유하기도 했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인츠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가르침에 의해 수비수로 전향한 후 그의 진가가 드디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6]
요약하자면 좀 늦게서야 자신의 진가가 드러난 선수. 처음부터 수비수로 뛰었다면 대표팀의 고질병이었던 오른쪽 풀백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7]
2.1. 분데스리가 ¶
독일에서는 차붐(차범근의 선수시절 별명)의 아들이란 것과 팀의 운이 잘 안따르는 선수로 유명하다. 차두리는 독일 리그 내 모든 공격수를 대상으로 한 집계 랭크 17위에 기록되고도 팀의 성적부진으로 주목을 못받거나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주춧돌이 되었으나 팀의 경영 문제로 트레이드 대상이 되어버리는 등의 일이 많았다.
독일 리그 초기엔 뛰어난 피지컬에 비해 떨어지는 개인기와 좁은 시야를 지적 받으며 여러 팀을 떠돌았으니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2007년 부터 2부 리그 코블렌츠에서 풀백으로 완전히 포지션 체인지에 성공.[8] 공수전반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2008년엔 소속 팀의 팬들이 뽑은 베스트 플레이어에서 2위에 랭크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로 이적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을 떠난 것. 2년 계약을 맺었으며 기성용과 같이 팀에서 뛰게 되었다. 때문에 셀틱 이적 후, 팀 적응 문제로 힘들어하던 기성용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차두리 본인은 첫 시즌에는 16경기, 두번째 시즌에는 15경기를 뛰며 확실한 주전이라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출전 수를 기록했다.그래도 분데스리가에서 경험하지 못 했던 리그 우승을 경험해 본 것은 차두리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듯.
2012년 뒤셸도르프로 이적해 분데스리가에 복귀했으나 가족문제로 인해서 소속팀에서 활동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특별휴가를 받다가 결국은 상호협의하에 계약해지를 하였다. 아내가 계속되는 해외생활에 힘들어 했다는게 해외 언론들의 보도.
2.2. K리그 클래식 ¶
2013년 3월 말 갑작스럽게 FC 서울 영입설이 떴다. 많은 축구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이면서도 동시에 신빙성을 의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서 입단을 기정사실화했고 3월 25일 서울 유니폼을 입은 공식 사진이 배포되면서 입단 확정되었다. 정식 입단 발표는 3월 27일이며 등번호는 5번을 배정받았다.
4월 14일 슈퍼매치에 선발출장하여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뤘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체력이나 실전감각 문제는 없었지만, 역시나 전술한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모습을 보였다. 고요한과 짝을 이룬 오른쪽 라인의 파괴력은 뛰어났고, 수원의 스테보와 피지컬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지난 2년간 세제믿윤이 서울을 농락한 수단이었던 스테보-라돈치치 트윈 타워를 앞세운 롱볼 전술에 유효한 대비책이 되었다. 그러나 후반 막판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수비 위치 선정에 미스를 범하면서 라돈치치를 무방비 상태로 놓치며 동점골을 허용하는 우를 범했다. 2013 시즌 최종 기록은 30경기 3어시스트. 경쟁자 고요한, 최효진을 가볍게 제압하며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14시즌에는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오른쪽 수비수로 자리잡았다.
전성기보다는 피지컬이 좀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떨어졌다는 피지컬로 내노라하는 K리그 공격수들을 압도했다. 수비력만 따지면 최효진보다 떨어지나 14시즌 서울이 3백을 주포지션으로 쓰면서 윙백으로 많이 출전했기에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고 최효진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피지컬과 스피드, 공격가담으로 압도적으로 꾸준히 최효진을 앞지르고 주전 출장했다. 물론 쓰리백에서만 우수했던건 아니고 가끔 사용한 4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비력이 약한건 사실이지만 그간의 경험을 허투로 먹진 않아서 옛날 뉴캐슬 3B 같은 폼은 절대 아니고 파트리스 에브라나 조제 보싱와같은 유형의 선수가 되었다.[9] 이 활약을 인정받아 14시즌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에 당당히 선정되었다.
2014 시즌이 끝난후 은퇴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박지성[10]도 은퇴한 마당한 마당이라 은퇴를 생각할 나이간 하지만 만 33에 은퇴한 박지성은 대표팀에서의 지나친 혹사로 인한 고질적인 무릎부상 때문에 요즘 선수치고 은퇴를 꽤 빨리한 편이고 3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선수가 많다는걸 생각하면 아직 이르다며 더 뛰어주길 바라는 의견이 많다.
14 시즌이 끝난 뒤, 시상식에 참여해 아시안컵이 끝난 뒤, 대표팀 은퇴라고 선언했다. 단 현역 은퇴는 아니라고 한다. FC 서울과 1년 재계약을 맺으며 15시즌을 함께하게 됐다.
2.3. 국가대표 ¶
예를 들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설기현이 골을 넣은 직후에 공을 받아 정석과도 같은 오버헤드킥을 찼는데...들어가지 않았다.당시 평소처럼 빗맞았으면 들어갔을텐데 그날따라 정타로 맞았다 카더라
여담이지만 저 때 차범근 감독은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들어가서 영웅 대접을 받아 연습을 소홀히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인데, 그래도 골로 연결되지 못한 건 아쉬웠다고.
본프레레호에서 기적의 3:1 독일전 승리때 MOM급 활약을 했다. 특유의 피지컬과 스피드로 독일 측면을 문자 그대로 박살내 버렸는데 독일 현지 캐스터가 '독일 2부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1부리그 출신 독일 선수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저 선수가 어째서 2부에서 뛰는거죠?'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이 경기에서 차두리 발업질럿이라고 불리는 폭풍 질주를 했다. 수비시 튕겨나온 공을 받아서 우리편 진영에서 상대 엔드라인까지 쭈욱 공을 몰고 달려가는데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에 크로스도 못올렸지만(...) 참고로 이때 계속 옆에서 따라오던 선수가 그 유명한 필립 람... 부심도 차두리따라 헉헉대며 쫓아갔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독일이 PK를 얻어 발락이 차는데 차두리가 방향을 가리켜서 이운재가 막았다. 그 방향을 가리키는 모습이귀여워서 꽤 화제가 되었었다. 여러모로 공격수로는 국대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인생경기...
하지만 이후로도 간간히 시험삼아 기용될 뿐 팀의 일원(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하다가 2009년 허정무 감독에게 다시금 기회를 부여받았다. 국내파와 해외파 통틀어 대표팀에서 가장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유럽, 아프리카의 파워형 공격수들과 맞서야 하는 대표팀의 새로운 옵션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2010년 5월 25일 한일전에서 일본 선수 세명을 피지컬로 모조리 튕겨내버린 두리블[11]은 폭풍간지.# 본격 차두라리스크!
다만 개인기와 경기읽는 능력은 여전히 모자라서 팬들은 하드웨어는 i7 5960X인데 소프트웨어는 윈도우 XP야...하며 탄식하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등번호 22번을 받았다. 차두리 스스로 22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이 이름(두리 = 둘 2)과 연관되며 프로포즈한 날짜, 결혼기념일, 부친 차범근의 생일이 22일이어서 라고 한다.홍진호가 흐뭇해 했다고 한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본선 B조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미칠듯한 활동량과 막강한 피지컬로 공수 양면에서 두루 활약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스의 주포인 장신 공격수 사마라스는 차두리에 막혀 경기장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덧붙여 이 때 캐스터의 멘트 차두리가 볼을 잡고 쇄도하기 시작하자 "폭풍질주가 시작됐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려서 폭풍질주라는 새로운 별명이 추가되었다.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오범석이 대신 나와 출전하지 못했다. 기술 축구인 남미를 상대하기엔 테크닉이 모자라서였다고 하는데, 아르헨티나전을 치른 장소가 고산지대라서였는지 한국팀이 힘에서 밀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지라 그의 강력한 플레이가 아쉽다는 주장도 있다.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리스전에서 이기긴 했지만 차두리의 플레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범석을 출전시켰다고 밝혔는데,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3차전 나이지리아 전에서는 선발 출장했으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구멍이 되었다. 나이지리아의 우체에게 완벽하게 뒷공간을 내주며 첫 실점의 원인이 되었고 그 후로도 여러차례 오른쪽을 비우고 중앙에 위치해 가장 큰 구멍중 하나가 되었다. 정말 인간의 능력만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16강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른쪽에서 활발한 오버래핑을 통해 공격 찬스를 계속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바레인과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차이콘이었다. 수비도 수비지만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가담에, 그동안 셀틱 경기 안보던 팬들에게는 차두리 크로스가 언제 저렇게 좋아졌음? 이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멋진 활약을 펼쳤다. 결국 후반 51분 강력한 슛을 날려 골키퍼가 막아낸 골을 구자철이 집어 넣으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달리는 긔여운 세리모니를 선보였다. 배성재 캐스터는 차범근에게 언제 저렇게 개조했냐는 드립을 날렸지만 차범근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경기에서 자주 발빠른 선수나 패싱 게임을 하는 팀의 선수들에게 자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앞의 공로가 무색하게 엄청나게 까였다.
2014년 2월 19일,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발표한 3월 5일 그리스와의 평가전 소집 명단에 차두리를 포함시켰다. 이는 약 2년 3개월만의 국가대표 선발이다. 축구팬들은 차두리가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의 활약을 재현할지 관심을 받고있으나, 고질적인 수비불안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마지막 히든 카드로 유력해 보였으나 월드컵을 앞둔 최종 명단에서 홍명보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sbs의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발탁이 되어 브라질에 가게 되었다. 주로 아버지와 같이 해설하지만, 간혹 혼자 해설하기도 했다.
2014년 8월 26일 이동국과 함께 대표팀에 재승선했다. 베네수엘라전, 우루과이전 모두 특유의 피지컬로 활약하며 자신을 기용하지 않은 홍명보 감독의 선택이 실수였음을 증명했다. 11월 14일 요르단전에서는 정확한 크로스로 한교원의 헤딩 골에 기여하여 팀의 유일한 어시스트이자, 개인적으로는 슈틸리케호 승선 후 첫 공격포인트를 챙기는데 성공했다. 나이 때문에 대표팀 은퇴의사를 밝혔고 2015년 아시안컵이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 전망이다. 마지막이라 화려하게 상대 측면을 박살내주시고 가시려나보다
2015년 아시안컵 쿠웨이트전에서 남태희에게 크로스를 올려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기성용과 함께 조별 리그 베스트11에 들어갔다. 참고로 기성용과 달리 차두리는 쿠웨이트 전에서만 선발로 뛰었는데도 들어갔다.
우즈베키스탄 전에서는 다시 후보였으나 김창수와 교체되어 투입 후, 상대방의 측면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연장 후반 14분 무렵 약 70m를 폭주하여 손흥민에게 추가골 버스를 태워줬다. 아시안컵에서만 돌아온다는 차이콘 골이 들어가자 배성재 캐스터가 그 분을 디스(?) 했다.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때 해설을.. " 박주호랑 곽태휘는 벤치에 처박고 차두리는 해설이나 시켰으니 분명 수비가 쩌는 팀이었을듯 더불어 이영표 해설은 이 골의 지분 중 99%를 차두리에게 줘야 한다고 극찬했다.
사실 차두리가 월드컵 대표에 뽑히지 못한 건 최강희의 탓이 컸다. 폼도 괜찮았고 조광래 시절 중용되던 차두리를 부임 이후 한번도 소집하지 않았으니... 이는 최강희와 차범근의 안 좋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이후 이혼문제로 폼이 죽긴 했지만. 2년여동안 국대 멤버들과 발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월드컵 대표로 선발하긴 어려웠을 터.
사실 차두리가 월드컵 대표에 뽑히지 못한 건 최강희의 탓이 컸다. 폼도 괜찮았고 조광래 시절 중용되던 차두리를 부임 이후 한번도 소집하지 않았으니... 이는 최강희와 차범근의 안 좋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이후 이혼문제로 폼이 죽긴 했지만. 2년여동안 국대 멤버들과 발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월드컵 대표로 선발하긴 어려웠을 터.
2.4. 그 외 ¶
- 독일 소속 팀과 재계약하는 것을 포기하고 K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의 팀인 수원에서 함께 뛰고 싶어했다는데 차 감독이 수원 삼성 감독에서 물러나면서 무산되었다.
- 2001년 월드컵 대표팀이 고려대와 연습 경기를 끝마친 후, 히딩크 감독은 고려대 선수 하나가 계속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다 끝났다'고 일러주었는데, 선수는 '난 지금 고려대 선수니까 우리 감독의 말을 듣겠다'며 훈련을 계속했다. 이 당돌한 선수가 누군가 싶어 물어보니, "차두리라고 그 유명한 차붐의 아들입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히딩크는 차두리를 월드컵 대표선수로 발탁했다.
- 2003년 말에 굿데이 기자를 폭행했다고 모함을 당한 김병현을 옹호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올리기도 했다. 이 글에선 "...저는 야구를 잘 보지도 않고 김병현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기자들이 워낙에 엉뚱하게 기사거리를 만들다보니 억울하게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 이때 유달리 욕으로 악플을 달던 이가 있었는데, 이걸 오마이뉴스 기자가 Ip를 추적했더니만 그 신문사가 나왔다고 한다. 이 보도에 당시 굿데이는 물론 부정했지만, 당연히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6개월만에 망해버렸다. 사실 며느리 사정은 동서가 안다고, 차두리 역시 스포츠신문 기자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인터뷰를 거절하자 다음날 '어린 놈이 좀 잘나간다고 오만방자하게 군다'는 훈계조 기사가 났다고한다.
- 2010년 6월 29일 차두리는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스코틀랜드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따로 탔다. 이유는 경기종료 후 이틀 뒤 스코틀랜드 팀으로 러브콜이 들어왔다고 바로 비행편을 잡고 대표팀과 인사를 나눈 뒤 탑승게이트로 들어가 스코틀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김남일도 요하네스버그에서 바로 러시아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과 2년 계약을 맺었다.
참고로 규정상 2년간 A매치 75% 이상 뛰거나 보증인이 있어야 스코틀랜드 리그에 이적할 수 있어, 차두리는 75%를 못채워서 보증인을 서게 했는데 그 보증인이 다름아닌 프란츠 베켄바워.[13] 아버지 친구라서 친히 써주었다고 한다. - 한때는 축구선수가 아니라 스포츠 기자를 꿈꿨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자 친구들처럼 축구를 잘 아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의 고려대 시절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였으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 아버지가 겪은 일을 본 후로 정나미가 떨어져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이런 이력 덕에 운동선수답지 않게 각종 시사상식과 지식이 풍부한 편이며 언변도 수려해서 아버지와 함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해설을 맡아 호평을 들었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외국 생활을 오래해온 덕에 독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차두리의 독일어 인터뷰 대표팀 초년병 시절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 도 독일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둘은 통역 없이 직접 독어로 대화했다고 한다. 일상언어로도 독일어가 조금 더 편해서 해설 할 때 메모를 할 일이 있으면 독일어로 한다고 한다. 2014 월드컵에 해설로 나섰을 때는 옆에서 파트너 배성재 캐스터가 커닝이 안 된다며 장난스레 불만을 제기했다고. 또한 독일 국가대표팀 경기를 해설할때는 장난스럽게 독일을 응원하기도 하고 독일선수 라인업 소개를 독일 본토 발음으로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밌게도 아버지 차범근은 꽤나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음에도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부자가 함께 참여한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가 나와 차두리가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렇게 못할수가 없다며 장난스레 말하자 차범근은 나는 축구로 잘했잖아라고 일축해 웃음을 주었다.
답답한 놈이 한국어 배우겠지차범근의 장녀이자 차두리의 누나인 차하나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서 일했다고 한다. - 고교 시절의 축구부 동기 중에 연예인이 있었는데. 바로 개그맨 노우진. 그 때 축구부의 분위기메이커였단다.
- 2009년 한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신철호 회장[14]의 장녀 신혜성. 일에 쫒겨 어린 아들을 제대로 코치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던 차감독은 손자가 태어나면 축구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그 후 1남 1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는데, 첫째 딸의 이름을 아인(Ein)[15], 둘째 아들의 이름을 아일(Ail)[16]이라 지었다. 자녀들 이름짓는 방법이 아버지와 똑같다.
그런데 2013년 4월 3일, 이혼기사가 떴다. 아내가 오랜 해외생활을 견디지 못해 부부사이가 소원해졌고 이에 차두리가 먼저 이혼 조정신청을 했다고 한다. - 성격이 좋아서 훈훈한 일화들이 여럿 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예선 첫 경기인 바레인전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상대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국가대표 초년병 시절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교환 요청을 하다 거절당한 경험이 떠올라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유니폼을 건네줬다고 한다. 이란전에서도 연장전에 터진 윤빛가람의 골로 1:0으로 패배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란 선수를 위로하는 매너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트위터 유저다. 아이디는 robotdr22
- 국가대표 축구팀 주치의 송준섭 유나이티드 병원장은 차두리가 타고난 신체라는 것을 설명하며 "로봇 심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엘리트 운동 선수들은 심장 근육 벽이 일반인보다 두꺼워지는 심장 비대(肥大)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극심한 운동에 몸이 적응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차두리는 심장 기능이 원래 뛰어나서 심장벽의 두께가 일반인과 별 차이 없다고 한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처참한 경기력으로 광탈하고 왔음에도 홍명보가 유임되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는 의미심장한 트윗을 올렸다.여기 이후에 쿨함 브라질 마지막 칼럼에서 밝히길 "그 입 다물라!"는 차붐의 엄명이 떨어졌다고 한다.[17]
-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방영된 차범근, 차두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신이 박지성이나 손흥민만큼 축구를 잘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차범근은 반대로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아들이 힘들어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K리그 베스트 을레븐에 선정된 후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드디어 인정받은거 같다고 소회를 밝힌걸 보면 워낙 성격이 좋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살아오며 마음 고생이 굉장히 심했음을 알 수 있다.
- 팬들은 차두리가 활약을 보일 때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기량이 많아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종의 관용구인데 위에서 서술한 독일전 전설적인 3-1 승리 때 필립 람과 스피드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송재익 캐스터가 친 멘트에서 유래. 왜 기량이 '많아졌'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어색하면서도 묘한 어감 때문에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 인테르와의 평가전 태클항의
3. 차두리 로봇설 ¶

인터넷 몇몇 사이트들에서 신빙성(…)을 얻고있는 가설. 차두리는 사실 차범근의 아들이 아니라 차범근이 제작한 무선조종로봇이라는 음모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차두리의 사기급 육체 포텐셜과 차두리가 볼을 잡았을때 반드시 일어나는 상황, 차두리의 표정 등 여러가지에서 추론되고 있는 가설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고 있다.
1. 아무도 그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18] |
사실 2002년 한일월드컵 무렵에 나온 개그다.[19]
결국 이런 만화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 만화는 2010년 6월 15일 YTN에서 매스컴도 탔다. 그 후 6월 24일 KBS 9시 뉴스에는 이 로봇설을 총정리한 뉴스가 떴다. 이걸 알게 된 차두리는 장난스레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고(...), 2~3일 뒤 네이버에선 차범근에게 질문을 하는 코너에서 차두리 로봇의 설계도를 언제 공개하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나왔다.(...)
로보트… |
그리고 23일에 있는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차두리가 USB 꽂고 충전하고 오겠습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부자가 이 가설을 즐기는 듯 하다.
2015년 1월 22일 아시안컵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차두리 로봇설이 다시 제기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해설을 하느라 조이스틱 조정이 힘들었는데, 해설을 그만둔 후 Windows 10으로 OS를 업그레이드하고 홀로렌즈로 원격조종했다 카더라.[20] 그리고 실은 OS가 독일어로 깔려있기 때문에 독일어를 알아야 제대로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4. 문신 ¶

2010년 월드컵 때 웃도리를 벗어 제껴서, 문신을 한 모습이 공개 되었다.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팔에 각각 문신을 하였다.
- 왼쪽 옆구리
차두리 로봇설을 증명하는 시리얼번호
왼쪽 옆구리의 문신은 로마 숫자 표기법으로 된 숫자이며 2개의 날짜를 의미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구분을 위한 점이 찍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V I I . I I . M M X => 7.2.2010 => 2010년 2월 7일 X I I I . I X . L X X V III => 13.9.78 => 78년 9월 13일
첫번째 날짜는 딸 차아인양의 생일이며, 두번째 날짜는 부인인 신혜성씨의 생일이다.이젠 이 문신을 지웠겠지? - 오른쪽 팔
오른쪽 팔의 문신은 히브리어의 아인(Ayin)이라는 글자이다. 위의 4가지 글자 모두 아인을 뜻하는 표기인데, 이중 4번째 글꼴과 동일한 문신을 했다. 문신의 의미는 당연하 딸의 이름을 의미한다. 딸래미바보 확정.
참고로 2011년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의 생일에 맞추어 문신을 추가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양팔 가득히 문신을 추가해서 약간 흠좀무한 비주얼을 보이고 있다.
차범근의 칼럼에 이 문신에 관한 비화가 나왔다. 이혼의 충격 때문인지 양팔에 잔뜩 문신을 하고 서울과 계약을 한 뒤 서울집에 돌아갔을 때 차씨집안의 실권을 쥐고있는 차범근의 부인(일명 두리엄마)이 화가 폭발하여 무려 한달 가까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집안에서는 사시사철 긴팔만 입게 한다고..차두리말에 따르면 이혼당시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서 뭐라도 했었어야 했다고 해명. 차범근은 베컴덕후 차두리가 베컴의 양팔 가득한 문신을 따라한 것으로 추측했다고 한다. 아마 다시 솔로가 된 해방감에 그런것일지도.. 참고로 차두리는 생제르망에 입단한 베컴의 유니폼을 사기위해 독일에서 파리까지 직접가서 줄을 서서 유니폼을 살정도로 베컴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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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임 "갓 오브 워"의 주인공 "크레토스"와의 합성. 일본 평가전 직후 등장한 이 합성은 그리스전과 연관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게임의 주인공 크레토스가 올림푸스의 신들을 박살낸 것과 경기 결과가 훌륭한 싱크로(…)를 보여줬기 때문.
그리스! 당신들의 적이 돌아왔소! 그리스팀을 파멸시키고 말것이오! - [2] 수비 연습을 같이 해주던 정해성 코치는 차두리에게 받히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 [3] 차두리만 몸이 좋은 게 아니다. 차범근 감독의 세 자녀 중 맏이인 하나는 딸인데, 목격자에 의하면 차두리는 크지만 근육으로 압축해(?) 놓았는데 차하나는 그것을 다 풀어 놓은 상태의 거구이다. 해병대 출신 막내 세찌 또한….
- [4] (디디에 드록바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정도니 말 다 했다.
- [5] 국가 대표 경기 도중에는 공보다 더 빨라서 차두리가 먼저 골라인 밖으로 나간 다음에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피지컬이 전성기보다 떨어져서 공이랑 같이 달려 전성기가 온 것이라고 카더라 - [6] 어려서부터 축구 교육을 단단히 받았다면 정말 한국 축구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천재가 태어났을 거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피지컬 하나는 뛰어나다. 다만 문제는 역시 기술...그래서 팬들은 차두리의 2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재이니 태어나면 무조건 영재교육 시켜야 한다라며 김치국을 마시는 중. 결국 2011년에 정말 사람들이 기대하던 차두리의 아들이자 차범근의 손자가 태어났는데, 이를 두고 요르단과의 2차전 때 배성재 캐스터는 "차범근 해설위원, 얼마 전에 2030년 월드컵 주축이 될 유망주를 얻으셨죠?"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차범근은 매우 당황해했다.
- [7] 레프트백은 이영표가 은퇴한 2011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그마저도 조광래가 수비 포지션 파괴하고 홍명보가 폼 떨어진 자기 양아들만 기용 해서 문제를 심화시킨면이 더 컸다. 하지만 라이트백은 송종국의 전성기가 3년도 채 못가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온 문제였다. 폼 떨어진 송종국을 대체할 멤버가 필요했지만 찾을수가 없었다. 그나마 오범석이 대체자로 가장 가능성이 높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점점 불안해져서 결국 라이트백 포지션에 완전히 적응한 차두리가 다시 뽑혔다.
그리고 오범석은 아르헨전에서 거하게 사고 쳐서 대표팀에서 보기 힘들게 되었다최철순, 최효진 같은 선수들도 있긴 했지만 이들은 오범석보다 국대 경험이 더욱 없었고 피지컬이 약해서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 [8] 마인츠 시절에 풀백 포지션 변경을 제안받았으나, 바로 완전 자리 잡지는 못하고 윙과 풀백을 번갈아가면서 봤다.
- [9] 에브라와 보싱와 둘 다 수비력으로 정상급인 선수는 아니었으나 발이 빠르고 공격력이 우수해 맨유와 첼시라는 리그 정상급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
- [10] 사실 빠른 81이라 사실상 동갑이긴 하다.
- [11] 드리블이란 공을 굴리면서 상대방 선수를 피해 상대 진영으로 공을 몰고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두리블은 공을 굴리면서 상대방 선수를 튕겨내는 것. 만화 캡틴 츠바사에 꽤 나오고, 실로 한국 캐릭터이고 아버지인 차범근이 베이스인 차인천이란 캐릭터가 중전차 드리블이란 똑같은 기술을 구사한다!
- [12] 그리스의 공격수 사마라스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닮아서 나온 유머(차두리는 스님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론 개신교 신자이다. 다만 예수로 묘사된 사마라스는 정교회 신자.) 여담이지만 이 대회 이후 차두리와 사마라스는 같은 팀 동료가 되었다.
- [13] 독일 축구계의 레전드 0순위. 간단히 스펙을 적자면 선수시절: 바이에른 뮌헨에서 리그우승 4회, 포칼컵 3회 우승, 충격의 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 월드컵 4강, 준우승, 우승 각 1회, 유로 우승 1회 발롱도르 2회수상/ 감독시절: 월드컵 준우승, 우승 각 1회, 바이에른 뮌헨에서 땜빵으로...리그우승 및 UEFA컵 우승 1회. 현 바이에른 뮌헨 회장.
- [14]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은 2010년 월드컵 당시 SBS로부터 중계권을 사서 사위의 경기를 중계하기도 했다.
- [15] 독일어로 '아인'은 '하나'. 정확하게 따지자면 아인스(eins)
- [16] 웨일즈어로 '둘째'
- [17] 차범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조광래와 정반대 성격으로 설사 자기가 불합리한 일을 당했어도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 [18] 차범근이 찍은 유제품 CF에 등장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몸싸움의 귀재였다. 흠좀무
- [19] 하지만 뒤집어 보면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도 차두리의 피지컬이 그만큼 높고, 또 차두리의 활동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저런 개그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20] 공교롭게도 이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10 추가정보 및 홀로렌즈의 공개 이벤트가 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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