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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램파드
끄트머리 사무실
2014. 9. 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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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램파드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맨체스터 시티 FC No.18 | |
프랭크 램파드 (Frank James Lampard Jr.) | |
생년월일 | 1978년 6월 20일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런던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1] |
신체조건 | 184cm, 88kg |
유소년팀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94~1995) |
소속팀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95~2001) 스완지 시티 AFC (임대) (1995~1996) 첼시 FC (2001~2014) 뉴욕 시티 FC(2014~) 맨체스터 시티 FC(임대) (2014~ ) |
국가대표 | 102경기 / 29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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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티 FC에서 정리한 프랭크 램파드의 커리어 |
이제는 EPL의 전설이 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중앙 미드필더.
영원한 푸른 심장.
애칭으로 Super Frankie Lampard로 불리운다.[10]
1. 개요 ¶
잉글랜드 국적, 현 맨체스터 시티 FC 소속의 미드필더이다. 강철같은 체력, 순간적인 패널티박스 침투력에 이은 뛰어난 슈팅력과 득점력, 창조적인 패스가 특징인 선수다. 덤으로 악명높은 떡밥인 제라드 vs 램파드 논쟁의 주인공이다.
2.1. 웨스트 햄 시절 ¶
원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유스 출신이었지만 2001년 첼시로 이적했다. 아버지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는 웨스트햄의 레전드 풀백이자 웨스트햄의 코치였는데, 이모부 또한 역시 웨스트 햄 감독이었다가 포츠머스 FC와 사우스햄튼 FC, 토트넘 핫스퍼 등을 거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감독을 하고 있는 해리 레드냅이고, 해리의 아들 제이미 레드냅은 잉글랜드 국가대표와 리버풀 FC에서 뛰었다. 램파드의 웨스트햄 시절이 아버지가 코치로 있고 이모부가 감독이던 그 시절이라 빽으로 경기에 나온다고 웨스트햄 시절에는 팬들에게 많이 까였고, 빛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모부와 아버지가 경질(...)당하면서 본인도 짐을 싸게 되고, 런던 라이벌 첼시가 1100만 파운드에 램파드를 영입했는데, 당시에는 거품이 낀 가격이었다는 평이 대세였다. 하지만...
2.2. 첼시 시절 ¶
첼시로 이적하고 나서 무리뉴 감독 시대에 들어서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 잉글랜드 최고의 미드필더로 칭송받게 되었고, 결국 첼시와 함께 숱한 우승컵에 빅 이어까지 들어올리며 웬만한 프렌차이즈 스타를 뛰어넘는 전설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03-04 시즌부터가 램파드의 전성기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시기 마케렐레와 짝을 맞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04-05 시즌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서 가히 절정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발롱도르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 시즌은 마케렐레와 평행한 자리였다면 이 시즌은 조금 앞선 자리에서 보다 자유롭게 경기 전체를 조율하면서 득점까지 만만찮은 무서운 미드필더였다.
05-06시즌은 에시앙의 영입으로 박스 투 박스에서 프리롤에 가까운 미드필더로 전업하는데 미드필더로서는 경이로운 득점인 16득점을 기록하여 득점 랭킹 공동4위에 올랐다. 게다가 08/09시즌에는 다른 팀들의 팬들마저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며 비록 스탯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나 거의 전 경기를 기복없이 소화하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줬다.[12][13]
09/10 시즌에는 초반에 다소 주춤하더니 어느새 22골 17도움을 찍으면서 스탯괴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 시즌 32골, 리그 22골이란 무시무시한 스탯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14]. 하지만 38라운드 위건과의 경기에서 웨인 루니와 득점왕 경쟁을 펼치는 드록신에게 pk 양보하지 않으면서 해충갤에서 스탯 덕후라고 미친듯이 까였다. 물론 2번째로 얻은 pk는 드록신에게 양보하고 결국 드록바가 득점왕을 얻어내면서 묻히긴 했지만...참고로 드록바가 넣은 첫 번째 골, 즉 득점왕을 결정지은 골도 램파드가 어시스트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드록바의 득점왕 등극엔 램파드의 도움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11시즌 중에 탈장수술을 받은 이후 경기력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램파드 최대의 장점인 강철몸이 무너져 버린 거야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이었다. 허나 이 수술을 받은 이후 피지컬이 하락해 버린 게 컸다. 본래 강력한 몸빵과 뛰어난 활동량, 준수한 주력을 바탕으로 재빠른 2선 침투와 슈팅 및 중원에서의 키핑과 빠르고 정확한 볼배급으로 활약했지만 피지컬이 무너지니 도미노처럼 한순간에 그의 거의 모든 능력이 무너져 버렸다. 안첼로티의 다이아몬드 미드필드에서도 좀 겉돌 만큼 본래 월드클래스 기준으론 센스 있는 패스나 빼어난 탈압박이나 드리블과는 좀 거리가 있었던 만큼 키핑과 그 이후의 빠른 패스가 죽어버리자...
하지만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해트트릭을 선사하며 램파드의 부활을 알렸다. 첼시 역사상 현재 5번째로 가장많은 득점을 올린선수가 되었으며, 첼시의 만번째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본인은 긱스처럼 선수생활을 오래하고 싶다고.
그러나 2011년 후반기부터 시작된 보아스와 선수들간에 세력싸움, 즉 항명파동에 휘말렸다. 램파드가 아무리 첼시의 레전드급 선수라지만 새롭게 부임한 보아스는 실리주의파로써 폼이 떨어진 램파드는 가끔씩 벤치에 앉게되었는데, 이로인해 마찰이 일어난것. 출전시간에 대해 불만을 표하면서 첼시 베테랑 선수들과 새로이 부임한 감독간의 감정의 골이 더욱더 깊이지면서, 첼시는 더욱더 나락으로 빠지고 있다. 물론 골도 꼬박꼬박 넣어주며 9년 연속 10골 이상 기록이라는, 프리미어 리그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우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보아스 감독의 행동에서 나왔다고 볼수도 있다. 최고참격인 드록바와는 5달, 램파드와는 9달차이인 보아스는 그가 라커룸을 휘어잡기 위해 했던 행동[15][16]들이 평소에 이루어졌던 행동들과는 거의 다른것들이였고, 이것이 잘못 맞춰진 톱니바퀴 마냥 불협화음을 내는것.
결국, 고참선수들은 이러한 행동에 자신들이 외면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고, 이러한것으로 하여금 적대감이라는 소통의 벽이 생기는 것이다.SBS 다큐에 출연시켜줘야 하나
결국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보아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7월 펼쳐질 여름 이적시장에서 피의 숙청이 펼쳐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생각했다. 그와 감독간의 불화설이 터진 이후로 미국팀을 비롯한 많은 팀으로부터 많은 이적설이 터진것도 사실이였지만 보아스가 경질 당하면서 미래는 불투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 경질 이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첼시의 미드필더진에서 홀로 빛났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지휘 하에 투 볼란치의 한 자리를 맡으며 볼 전개와 수비적인 롤을 매우 잘 소화해냈다.
특히 강팀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램파드는 빛났다. 토트넘과의 FA컵 4강전에서 전성기 급의 롱패스를 전달해 드록바의 골을 도왔으며, 3년 만에 프리킥 골까지 넣었다. 곧바로 이어진 바르샤와의 1차전에서는 메시의 공을 뺏어서하미레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롱패스로 드록바의 결승골을 도왔고, 수비력 역시 훌륭했다.
2차전에서는 그야말로 람마에. 1명이 퇴장당해 볼장 다 봤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클래스 돋는 멋진 패스를 하미레스에게 찔러넣어 만회골에 큰 공헌을 했다. 바르샤와의 1, 2차전의 숨은 공신 중 한 명.[17]
그 뒤 FA컵 결승에서 드록바의 쐐기골을 멋진 패스로 도왔으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자신의 몫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승부차기 역시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우승 이후 디디에 드록바, 존 테리와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은 이 세 사람을 지켜본 첼시 팬들로 하여금 눈물나게 하는 장면.
시상식에서는 많은 첼시 팬들이 그와 존 테리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결과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2-13시즌을 끝으로 첼시와 결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대부분의 팬들은 왜 버리냐면서 로만을 까지만...현재 첼시가 새로운 규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긴축재정이 필요한 지라 어쩔 수가 없는 상황. 다만 딱히 중원에 대한 대책 없이 선수를 파는 것에 대한 우려도 없잖아 있다. 현재 램파드의 대체자는 오스카가 유력한데 아직 오스카는 램파드 수준의 피지컬을 갖추지 않아 불안한 면이 많아서...어찌됐건 만약 헤어져야 한다면 마지막은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 양쪽에게 좋은 상황이다. 현재 링크가 걸린 곳으로는 유벤투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있었는데 LA 갤럭시가 2013년 들어 강하게 링크가 걸리고 있다.
2013년 2월 3일 뉴캐슬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뒤지던 후반에 환상적인 중거리 슛을 골로 만들어내며 첼시에서 EPL 최초로 10시즌 연속 리그 두자리수 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0304~1213시즌) 이게 공격수야 미드필더야
이렇게 팀에 공헌하는 선수를 내치고 시즌에 10골도 넣기 힘든 토레스를 믿는 첼시 보드진은 정말 답이 없다
여기에 2월 6일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 역전 중거리골을 넣었다. 그와 함께 귀신같이 첼시에서 다시 램파드와의 재계약 협상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나왔다.[18]
2013년 3월 17일 첼시 통산 200골을 달성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였다. 첼시에서 최다 득점자이자 레전드인 바비 탬블링과는 이제 2골차. 프리미어리그는 물론이고 유로파 리그, FA컵도 아직 남았기에 최다 득점기록도 무난히 깰것이라 예상중. 그리고 2013년 5월 11일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원정경기에서 혼자 동점 골과 결승 골 두 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승리와 다음 시즌 챔스 진출을 견인, 마침내 첼시 통산 203골을 달성하며 첼시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이날 램파드가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첼시 원정팬들에게 달려가 세리머니를 하는 도중 원정팬들 몇 명이 우르르 난입하기도 했다.#하긴 일생일대에 한번 볼까 말까한 상황인데 몇몇 똘끼 있는 팬들이라면 난입할 만도 하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루이즈와 함께 중원을 이루며 벤피카에게 털리기도 했으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중거리 슛을 전반 전에 날리기도 했으며, 후반전에도 골대에 맞고 나오는 화끈한 중거리 슛을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주장으로써 테리와 함께 이번에는 보싱와가 없다!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첼시와 1년 재계약에 성공하며 2014년까지 뛰게 되었다! 여기에 전성기 시절 은사 of 은사인 주제 무리뉴감독까지 돌아오면서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럴수록 지금은 고통의 아이콘이 돼버린 한때 라이벌은 웁니다
2013-14 시즌 헐시티와의 첫경기에서 전반 초반 토레스가 얻어낸 PK를 골로 연결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이후 프리킥으로 아름다운 골을 만들어내며 본인의 기록을 204골로 늘렸다. 팀도 2:0으로 승리했다.
아마도 이번 13-14시즌이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들려오고 있다. 40살까지 마냥 뛰어줄 것만 같았던 철강왕이지만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는 법이다...
그런데 더 선에 의하면 LA 갤럭시로 이적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더 선이라는 찌라시 신문을 알면 다 믿을 게 절대 아니지만.
램파드 재계약건에 대해서는 첼시에 대해 잘 모르는 팬들은 첼시를 레전드 대우가 형편없다며 까지만 첼시 팬들은 오히려 첼시 보드진이 아닌 램파드를 깐다. 기량이 여전하다면 모를까 기량이 하락할만큼 하락한 현재도 한화로 2억이 넘는 과분한 주급을 요구하고 있다. 첼시 구단측에서는 기량도 예전만 못한 램파드를 무리한 주급까지 주면서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첼시 팬들은 램파드의 이런 태도를 문제삼으며 까고 있다.
결국 첼시 오피셜 트위터를 통해 13-14 시즌을 끝으로 첼시를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램파드가 첼시를 떠난다고 할때,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조세 무리뉴는
Jose: "The way Mr Abramovich approached the Lampard situation is amazing: You go if you want to go; you come back if you want to come back"
Jose on Mr. Abramovich handling the Lampard situation (1/2): "And you come back the way you want — to be an assistant, to be an ambassador"
Jose on Mr. Abramovich handling the Lampard situation (2/2): "to be a director, to be a coach, to be an assistant coach. That is fantastic"
Jose: "The way Mr Abramovich approached the Lampard situation is amazing: You go if you want to go; you come back if you want to come back"
Jose on Mr. Abramovich handling the Lampard situation (1/2): "And you come back the way you want — to be an assistant, to be an ambassador"
Jose on Mr. Abramovich handling the Lampard situation (2/2): "to be a director, to be a coach, to be an assistant coach. That is fantastic"
" 아브라모비치 회장이 램파드에게 말한 이야기는 amazing 했다. "
" '떠나고 싶으면 떠나되, 돌아오고 싶다면 바로 돌아오라' "
" '너가 원하는 직책으로 돌아오라, 어시스턴트 코치든, 클럽 대사이든, 단장이든, 코치든' "
" 그건 환상적일 것이다. "
" '떠나고 싶으면 떠나되, 돌아오고 싶다면 바로 돌아오라' "
" '너가 원하는 직책으로 돌아오라, 어시스턴트 코치든, 클럽 대사이든, 단장이든, 코치든' "
" 그건 환상적일 것이다. "
Jose Mourinho: "I have a message for Frank. Good luck and see you back at Chelsea in a couple of years.” #CFC (Telegraph)
" 나 또한 프랭크를 위한 메세지가 있다. "
" 행운을 빈다. 그리고 몇년 후 첼시에서 보자. "
" 행운을 빈다. 그리고 몇년 후 첼시에서 보자. "
첼시 유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첼시에서 갖는 위상이 어떠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 근데 만약 감독으로 돌아오겠다면?
2.4. 맨체스터 시티 시절 ¶
2015년 3월부터 MLS가 시작되므로 시즌 전까지 맨체스터 시티 FC로 임대된다. 홈그로운 충족과 동시에 야야 투레의 포지션을 백업해준다는 것이 맨시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맨시티의 첼시전에서는 출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9월 13일 아스날 FC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으로 맨시티 데뷔전을 치뤘는데 전반 45분 동안 얻은 평은 똥을 쌌다 정도...
9월 21일 첼시와의 경기에 77분 교체 출전하여 동점골을 기록했다!! 골 세레머니는 하지않았다. 게다가 램파드가 뛴 20분가량 한 명이 부족한[19] 맨체스터 시티는 램파드의 조율능력 앞에서 이게 정작 한명이 부족한건가 생각이 들정도로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골을 넣고난후 세레모니를 하지 않으며 진정한 첼시 레전드이자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첼시 팬들은 첼시 레전드가 골을 넣어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애매했다 카더라
3. 국가대표 ¶
이러한 현상은 첼시와 대표팀의 전술적 차이에서도 기인하는 바가 있고, 램파드 개인의 성향에도 그 원인이 있다.
램파드는 체력, 활동량, 중거리 슈팅력, 높은 곳에서의 위치선정 능력과 그에 따른 결정력, 뛰어난 피지컬, 빠른 사고력 등이 장점인 선수다. 이를 바탕으로 원터치 투터치 패스나 슈팅 등 다이나믹한 공격전개에는 출중하다. 첼시의 허리진은 전적으로 램파드의 이러한 공격적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에시앙 등의 허리진영은 주로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하며 램파드를 지원하고, 램파드의 패스를 받아먹을 좌우 날개들은 빠르고, 드리블과 컷인 즉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는 플레이나 공간 따먹기에 능숙하다. 공격진도 드록바 등 힘과 체격을 겸비한 공격수가 일선에서 수비수들을 견제하며 램파드를 위한 공간을 지원한다. 이러한 전술도 에시엔이 장기 부상으로 인해 서서히 폼이 떨어지면서 수비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램파드의 포지션도 애매하지기 시작했다.
반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이러한 전술을 활용하기가 대단히 애매하다. 제라드 램파드 논쟁에서 문제가 되듯 제라드를 제대로 활용하기 못하게 된다는 것. 사실 제라드가 멀티플레이어인 만큼 사이드나 수미로 배치하면 되기 때문에 최대한 활용 못하는 것까진 괜찮다. 그러나 램파드의 패스를 받아줄 좌우 미드필더가 램파드의 성향과는 다른 게 가장 큰 문제다. 거기다가 최전방 공격수는 오웬 아니면 루니, 그도 아니면 헤스키나 크라우치...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인데 클럽에선 주로 4231이나 433을 쓰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442로 전환하고, 최전방은 결정력이 나쁜 떡대랑 결정력이 좋지만 키 작은 친구들, 그런데 날개는 보통 크로스 셔틀베컴이면 낫지만 베컴보다 못한 친구들이면 지옥 혹은 창의적이지만 느리다거나 피지컬이 안 좋다거나 해서 433에 어울리는 날개, 거기다 드리블로 활로를 뚫어줄 선수는 잘 보이지 않는다.
램파드는 첼시에서처럼 빠르게 합리적으로 전개해야 될 때는 무섭지만 돌파구가 일목요연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공을 효율적으로 돌리거나 선수들 재배치를 시키거나 하는데는 좀 부족한지라 이제 중원에서 개싸움이나 하게 되고 슬금슬금 제라드도 그 개싸움에 가담하면 이제 혼돈으로... 해답은 그저 가라 베컴 크로스! 베컴 프리킥! 베컴 코너킥! 이래서 가레스 베리 등으로 실험하고 하는 것.
그리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16강에서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전반에는 그가 찬 중거리슛이 누가 봐도 명백히 골라인 안쪽에 떨어졌으나 주심은 이를 골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물을 흔든 영혼의 슛만이 골로 인정되는 겁니다 후반에는 프리킥을 찼는데 골포스트를 맞고 나갔다. 이쯤되면 그저 지못미.(...) 그리고 팀은 앙숙이자 라이벌인 독일에 4:1로 관광당하며 16강에서 떨어졌다. 이 상황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 제프 허스트의 골논란과 놀랄만큼 유사한 상황이여서 혹자는 44년만에 퉁쳤다고도 한다.
4. 기타 ¶
오랜시간 함께 살며 두 아이를 낳은 동거녀가 있었으나 차버리고[21] 다른 여자를 만났다. 얼마전엔 휴가지에서 다수의 여성들과 나체파티를 즐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 아내와 다시 만나는 등 가족과 잘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여자관계 외에도 아이큐가 높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첼시 자체 팀내 지능검사에서 150이 넘는 아이큐로 해당 조사기관 기록 중 역대 1위를 찍어주셨다. 첼시 팀닥터인 브라이언 잉글리시는 아이큐가 '자신보다 높다'고 강조하기도. 사실, 램파드가 명문 공립학교를 나왔고 국가시험에서 12개 과목 패스하고 라틴어 A 받았다는 걸 고려하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결과이다.
인테르로 부임한 무리뉴 감독의 강력한 오퍼를 받았으나 첼시팬들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당시 첼시를 떠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후 일주일 뒤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리버풀과 만나서 연장전에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감동을 선사했다. 어머니의 사후 언제나 골을 넣은 뒤에는 하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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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램파드가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공미로써의 램파드는 안첼로티가 활용하다가 포기했을 정도로 공격형 미드필더는 아니다.
- [2] 이때 1위는 애석하게도 그 외계인 호나우지뉴
- [3] 1위는 라이언 긱스로 618경기 출장
- [4] 긱스는 램파드보다 출장경기는 많지만, 출장시간은 램파드에게 밀린다.
- [5] 1위는 앨런 시어러로 260골
- [6] 상기 기록은 최다골 기록이 갱신된 2013. 5. 11. 기준
- [7] 최초의 미드필더가 아니다. 최초의 선수다.
- [8]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역대 최다 연속경기 출장.
- [9] 2위는 38개 팀 상대로 득점을 한 앤디 콜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램파드의 39번째 득점상대는 다름아닌 첼시였다는 것이다.
- [10] 스탬포드 브릿지에 걸린 여러 걸개 중 이 문구가 달린 걸개는 첼시를 상징하는 걸개이기도 하다.
- [11] 그렇기에 람반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브릿지의 영원한 친구인 푸른 보석함의 심장씨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리더쉽과 카리스마가 있으나 팀의 주장인 테리와의 차이를 두기 위해 애칭인 람반장을 달아주었다.
- [12] 실제로 이 시즌에서 찬스메이킹으로는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다만 공격수가 아넬카와 칼루라는게 함정.
- [13] 중요 경기때마다 빛나는 활약을 펼쳤는데, 우선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두 골을 집어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바르셀로나 전에서는 토나오는 킬패스를 뿌려넣어 바르셀로나의 공세를 뒤흔들었고, FA컵 결승전에서는 역전골을 집어넣었다.
- [14] 08/09시즌 EPL 득점왕이 19골이었다는걸 생각하면... 흠좀무
- [15] 라니에리 시절부터 앞서 말했던 고참격 선수들은 라커룸을 자율적으로 이끌어나가도 된다고 했다. 즉, 라커룸의 분위기를 그들이 조성하게 한것. 그러나 보아스는 그가 라커룸을 잡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 [16] 또한 첼시 감독 대변인으로 꽤 오랫동안 활동해온 코치가 갑자기 해임되었다. 이는 곧 그가 실세를 잡겠다는 말로도 해석될수 있다.
- [17] 애초에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가장 강한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04-05 시즌에는 2차전 4-2 관광에 한 몫 하여 한 골 넣었다. 05-06 때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역시 1골. 06-07 때는 골라인 근처에서 골대를 향해 툭 찬것이 그대로 들어가는 놀라우 골을 성공시켰고 08-09 2차전에서는 그야말로 킬패스 오브 킬패스를 모두 보여주며 바르샤의 문전을 위협했다. 드록바가 날려먹어서 그렇지...여러모로 바르샤 킬러.
- [18] 소문에 의하면 로만 구단주가 직접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애슐리 콜과의 재계약 협상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 [19] 사발레타가 퇴장당했었다.
- [20] 사실 국대에서의 객관적인 기록 자체는 제법 괜찮은 편이고 특히 비교되는 제라드에 비해서도 나은 면이 있으나, 첼시에서 활약상에 비해 국대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데다 06 독일 월드컵에서 25 슈팅 0 득점을 하는 바람에 이러한 고정관념이 생겼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33 슈팅 0 득점으로 타이 기록을 세웠으며, 독일과의 16강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최고 기록 경신도 넘볼 수 있는 상황.
- [21] 동거녀의 남편이 무슬림이었는데 이혼을 안 해줬다고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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